화가의 발자취(年代記)

〔나의그림 나의 생애|화가 조향숙,② 1999~2008년〕산과 산 사이 大海(조향숙,조향숙 작가,수미산, 고은,高銀,현대불교신문,심방엄하,봉정암)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7. 14. 18:55

 

  

수미산, Woodcut 70×60, 1995. 이 작품이 연재소설의 타이틀 컷이다. 연재제목 수미산바로아래에 매주 이미지 컷으로 게재되었다.

    

 

 

불교우주관에서 나온 세계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 수미산(須彌山)8개 큰 산이 둘러싸고 산과 산 사이 대해(大海)가 있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자식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 제일 꼭대기에 오르더라도 부모의 은덕을 다 갚을 수 없다는 경전(經典)이다.

 

    

 

시인 고은(高銀)선생과의 만남 그리고 大家의 면모

필자와 수미산과의 인연은 신문사 컷과, 시인 고은(高銀) 선생은 1995~1998년까지 총 170여회의 수미산이라는 소설을 현대불교신문에 매주(每週) 한 편씩 발표하였는데 필자가 약155여 컷의 삽화를 게재하게 되었다. 필자와 수미산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처음 수미산 컷 제의를 받고 얼마동안은 삽화를 신문사에 넘겼을 뿐 정작 고은선생을 만나지 못했었다. 그러다 1996년 어느 봄날, 신문사에 컷을 넘기고 막 나오던 참이었다. 마침 고은 선생은 원고를 들고 신문사에 들어오려던 중이어서 신문사 앞 주차장에서 첫 대면하게 된 것이다. 고은 선생을 알아 본 필자가 먼저 인사를 드렸더니 고은 선생은 누구시지요?’하면서 혹 조향숙이라며 첫눈에 알아보았다.

 

선생은 청진동에서 해장국을 드시면서 오후에 강연이 있는데 소주를 한 잔 해야 되요. 아직 대중 앞에서면 떨리고 부끄러워요. 한잔 하면 나아집니다. 지금까지 나간 조 화백의 컷이 좋아요. 저의 글에 조금도 얽매이지 말고 화백이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하세요.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라고 해서 역시 대가(大家)의 면모에 놀랐었다. 그리고 그 첫 만남이 대단히 편했다. 그 이후, 이전까지는 소설의 내용에 맞게 표현하려 고민을 했었는데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즐겁게 작업하게 되었다.

 

삽화를 그리는 동안 필자는, 정말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 쏟았던 친정어머니를 떠 올리며 그렸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심장병으로 편찮으시던 친정어머니가 소식을 듣자 2층 계단을 한 걸음에 걸어 올라온 그 자식에 대한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이승에서는 못하지만 저승에 계시는 부모님을 위해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부처님을 뵈올 수 있는 마음으로 그림으로 그렸다.

 

 

 

 

 

 심방엄하,Woodcut 100×70, 2000. 암벽 꼭대기에 작은 암자가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부드러운 녹색을 머금어 바위조차 생명감이 물씬한 풍경 속에 자연의 일부가 된 봉정암이 성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심방엄하, 廻向의 공덕

설악산(雪嶽山) 봉정암(鳳頂庵)은 필자가 대학시절에 간적이 있다. 높은 산을 향해 오르고 또 오른 후에야 비로써 눈에 들어온 대청봉 아래 조그마한 봉정암 풍경은 그 자체가 하나의 비경(秘境)이었다. 자연적 불상의 바위를 바라보며 그곳에 머물고 있었지만 언젠가 이미 친숙했던 인연처럼 어린마음에도 적막한 가운데 포근한 마음의 평온을 느꼈었다.

 

봉정암 꼭대기에는 종()이 하나 놓여있다. 보기에도 그 아슬아슬한 공간에 어떻게 종을 놓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때 같이 동행한 한분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한 젊은 청년이 고고한 달밤에 그만 길을 잃어버렸는데 밤은 깊고 산길을 해매다 겨우 찾은 곳이 봉정암 이었다. 그 암자에서 따뜻한 밥과 잠을 재워주었는데 너무 고마운 그가 언젠가 다시 한 번 와서 꼭 인사를 드려야지하고 산을 내려왔지만 세월의 빠른 흐름 속에 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훗날, 봉정암에 종을 놓아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젊은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흔쾌하게 응했다는 것이다. 지난날 은혜를 갚고 싶었던 스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아슬아슬한 경사에도 불구하고 그 종을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곧 회향(廻向)의 공덕이리라.

 

 

 

 

   

 

천인(天人), Woodcut 110×80, 2008. 불교의 세계(佛國)를 날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꽃을 뿌려 부처님을 찬양하는 천인의 일종인 비천상(飛天像). 비천은 배꼽을 드러낸 상반신과 비단처럼 부드러운 천의를 두르고 있는 모습으로 신비한 표정과 섬세하면서도 유연한 손동작을 보여준다.

 

 

 

  

필자는 대학 때 산행을 많이 했다. 공부하고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산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내 청춘의 모든 것이 산 속에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매주 산에 갔고 방학이면 장기산행을 했는데 그 시절 어릴 때 본 봉정암을 다시 보게 된다. 필자의 심방엄하작품은 1970년대 필자의 대학시절 봉정암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다.

 

그 이후 아름다운 기억을 가슴에 묻고 2001년경 다시 봉정암을 찾을 기회가 왔었다. 반가웠고 설렜다. 그러나 다시 찾은 늦가을 만산홍엽(滿山紅葉)의 봉정암은 많은 인파로 산의 적막한 깊이가 묻힌 것 같아 대단히 아쉬워하면서 돌아왔다.

 

 

 

 

 

  출처=정리-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1224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