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강건함이 드러나는 경지 글=이진명 미술비평 권오봉(Kwon O Bong, 權五峰, 1954~)작가는 낙서(書)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나는 매스컴에서 권오봉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내가 생각하기에 권오봉의 그림은 낙서가 아니다. 장난도 아니거니와 멋대로 그린 것이 아니다. 화가는 시간의 거대한 흐름에 자기를 맡긴 것이다. 권오봉의 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도도히 흐르는 문화적 전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버린다는 것, 즉 ‘사(舍)’개념은 우리 동아시아 예술에서 최고의 경지이다.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이나 운림(雲林) 예찬(倪瓚,1301~1374), 석도(石濤)가 모두 ‘사’ 하나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가령 동파는 ‘동파지림(東坡志林)’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