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美術人

[갤러리 비선재]화가 권오봉‥청정과 강건함의 전통[이진명 미술평론가][권오봉 작가,권오봉 화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3. 10. 5. 17:06

권오봉 작가. 사진제공=비선재

 

청정한 강건함이 드러나는 경지

 

글=이진명 미술비평

 

권오봉(Kwon O Bong, 權五峰, 1954~)작가는 낙서(書)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나는 매스컴에서 권오봉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내가 생각하기에 권오봉의 그림은 낙서가 아니다. 장난도 아니거니와 멋대로 그린 것이 아니다. 화가는 시간의 거대한 흐름에 자기를 맡긴 것이다. 권오봉의 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도도히 흐르는 문화적 전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버린다는 것, 즉 ‘사(舍)’개념은 우리 동아시아 예술에서 최고의 경지이다.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이나 운림(雲林) 예찬(倪瓚,1301~1374), 석도(石濤)가 모두 ‘사’ 하나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가령 동파는 ‘동파지림(東坡志林)’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끼고 사랑하기에 파괴된다. 내버려두어 버리고나니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9)

 

진리는 언제나 역설이나 모순으로 드러난다. 애지중지 아끼는 대상은 강하게 크질 못한다. 반대로 잊었던 씨앗이 나도 모르게 열매를 맺는 것이다. 예찬도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난초가 사는 깊은 골짜기 해질 무렵 그림자 진다. 그 누구도 이토록 어여쁘고 고운 것 만들지 않았는데, 봄바람은 미소를 부른다. 10)

 

한 송이 들꽃은 타자에게 결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핀 것이 아니다. 햇빛을 가려 그림자가 자기 위에 져도 나무라지 않는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흔들고서야 겨우 미소를 발하는 것이다. 석도는 동파와 운림의 뜻을 받아들여 화론(畵論)을 지었는데, 화론의 핵심은 법자화생(法自畵生)이다. 11) 즉, “법은 그림에서 스스로 생긴다.”라는 뜻이다.

 

 

비선재 전시전경

 

권오봉 작가는 대나무, 갈퀴, 못으로 캔버스 바탕화면을 긁어서 율동과 리듬, 그리고 기세를 표현한다.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임진무소선(任眞無所先)”이라는 불멸의 여섯 글자 시구를 남겼다.

 

12) “진실함에 몸을 맡겨서 내세우는 바가 없다.”라는 뜻이다. 권오봉 작가의 그림이 바로 임진(任眞)의 세계이다. 임진은 오로지 진실함에 몸을 맡긴다(실존을 파악한다)라는 뜻이며, 장자(莊子,369 B.C.-289 B.C.)가 말한 이물위량(以物爲量), 즉 “사물(존재와 관계)에 따라 재량을 변화시킨다.”는 뜻과 같다.

 

의도나 의지조차 버리기 때문에 청정한 강건함 드러나는 경지가 바로 권오봉이 지향하는 회화세계이다. 순수와 겸허를 지향한 권오봉 작가가 가급적 채색을 지양하여 멀리한 이유이다.

 

[각주]

9)蘇軾,東坡志林:“以愛, 故壞:以舍, 故常在.”

10)倪瓚,題蘭畫詩:“蘭生幽谷中,倒影還自照.無人作妍暖,春風發微笑.”

11)石濤,苦瓜和尙書語錄:“法無障,障無法.法自畵生,障自畵退.法障不参,而乾旋坤轉之義得矣, 書道彰矣,一畵了矣.”

12) ‘장마철에 홀로 술 마시다(連雨獨飮)’라는 시에 등장하는 시어이다.

 

[출처=갤러리 비선재, ‘WHITE & BLACK PLANE’-5인 전시도록, 93~1110, 2023]

 

#캡션

(위 왼쪽부터)Untitled 2020, Ink on Hanji 200×152, 2020. 전시전경사진=권동철. Untitled 2017, Acrylic on Canvas 195×260, 2017. 사진제공=비선재. (중앙)Details. Untitled 2021, Ink on Hanji 200×152, 2021. 전시전경사진=권동철. (아래 왼쪽)Untitled 2022, Acrylic on Canvas 130×130, 2022. 전시전경사진=권동철. (오른쪽)권오봉 화백. 사진제공=비선재. <인사이트코리아 101일 보도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