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이 떠난 지 열흘 만에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했다. “심산(深山) 고찰(古刹)을 모조리 뒤졌지만 끝내 인각사를 찾을 수 없었는데, 우연히 어느 산에 갔더니 신라 때 창건된 낡은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승려에게 혹시 오래된 비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이 절에 있는 불전루(佛殿樓) 밑에 열 몇 덩이의 깨진 돌이 있는데 혹시 그것이 그것인가요?’하기에, 꺼내어 살펴보았더니 과연 오래된 비석이었습니다. 물로 씻어내고 새겨진 글자를 읽어보았더니 희미하게 ‘인각(麟角)’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습니다.1)”」 가을비 내린 다음날. 풍연(風煙)같은 잔석(殘石)에 새겨진 신비로운 필적(筆跡)처럼 회색구름 사이 아렴풋한 흔적들이 공연히 꿈틀거렸다. 단색화 ‘평면조건(平面條件)’과 불상, 도자기, 장롱 등 우리유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