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美術人

〔LEE JOUNG OK〕 민화작가 이정옥|화가는,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 (이정옥 작가, 화가 이정옥, 이정옥, 민화,무신도, 巫神圖)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6. 15. 20:35

 

 

 

 

 

장미꽃 향기 진동하는 서울의 한 고택(古宅), 정원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던 날 작가를 만났다. 백장미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초록의 싱그러운 잎들은 아름다운 생()의 절정 그 찰나의 충만함으로 하늘거렸다.

      

20대 시절, 미대 졸업을 앞두고 화가의 길을 가려던 작가에게 그러면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화두(話頭)에서 얻은 것이 나는 한국인이었다. “한국인 속에는 신바람 문화가 있었고 거기엔 춤도 노래도 있지만 그림으로 볼 때 나에게는 무신도(巫神圖)였다. 그 속의 도상화(圖像 化)적인 상징성, 장식성이 전혀 없는 순박하고 소박한 마음이 내 마음과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무신도가 일제 강점기 이후 가장 한국적인 것이 미신적이고 저급한 문화로 기피하는, 사장되는 문화로 저평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젊은 작가는 충격에 빠졌다. “수면위로 끌어 올려야 되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그래서 연구하며 그렸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40대가 되어 있었다.”

 

 

 

 

 

 

 

 

민화는 서민적 이야기인데 지금은 삶의 주거형식이 변했다. 그녀는 전통의 현대화 작업으로 계승하고 있다. 작품이 오늘날의 빌딩이나 아파트문화에 맞는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그러나 민화라는 장르를 빌어서 역사의 정신적 원류가 무엇인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메시지 전달에 전념하고 있다.

 

 

 

 

   

 

 

 

 

 

아름답고 존귀하고 멋있는 존재의 염원

호랑이는 민화에 이미 존재했는데 국제화시대 지구위에 올려 인류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란은 부귀영화의 소망을 세계 지도위에 같이 심어 형식이나 색감은 현대화했지만 한 번 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실감하게 하고자 한다. 뿌리가 있을 때 가지가 있고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또 당나라 여인작품도 가장 아름다운 포즈의 도상을 빌려와 핸드폰을 얹음으로써 소통의 역사가 이뤄지는 것을 표현했다. 우리의 빼어난 자연경관의 금강산을 통해 정신적 이상향을 보여주고 있다. 복잡한 현대인의 염원인 파라다이스의 힐링(healing)일 것이다. 그림 속에는 이상이 이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되기를 강력하게 염원하는 것이 담겨있다.

      

그녀는 민화 작업을 하면 빨려든다고 했다. “모란 꽃 하나를 그릴 때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면 꽃술 하나도 살아서 움직인다. 장차 후손들이 한 점 속에 얼굴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찍는 점이 후손일진데, 정말 아름답고 존귀하고 멋있는 존재로서 살다가기를 염원하는 것이 녹아든다. 어찌 숭고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화되면 환희가 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현상이 되면서도 가장 충만한 기운의 승화가 바로 그림 작업이다.”

   

 

 

 

 

 화가 이정옥

 

 

 

 

눈물은 절실하고 숭고한 순간에 나오는 것

어느 것 하나가 부단한 노력과 정진 없이 되는 것이 있을까. 하루도 물감을 갈고 붓을 드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작가는 금강산을 그릴 때 오늘 나의 삶이 그 속에 있고 그곳에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감으로 느껴지는 그런 승화를 항상 소망한다. 그것이 내 삶이고 나의 예술세계라고 말했다.

     

그녀는 화가를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신이 내게 준 축복이라 여긴다. 오랜 세월 그림을 그려왔지만 지금도 그림만 그리고 싶다. 홀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너무 기분이 좋은 것이다. 나는 슬플 때 눈물이 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절실하고 숭고한 순간에 나오는 것이 눈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촉촉해 지는 경우가 잦다라고 했다.

      

자연과 합일의 느낌, ‘가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생성과 소멸에 대한 인식의 감화와 다름 아닐 것이다. “결국 그림 하나만 할 수 있다는 것과 그렇게 걸어 왔고 그렇게 갈 것이라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정말 잘 왔다갔네라는 그런 존재로 남고 싶다. 사실 그마저도 없어야하는데 그러면 너무 도인 같아 보이지 않겠나?”(웃음)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620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