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네오니스트 진선(Jin Sun)
숲엔 안개가 자욱한데 한 소녀가 낯선 세상에 홀로 남겨집니다. 낯선 세상의 문을 열고 한 걸음씩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려나가죠. 스페인어로 문(門)이라는 뜻의 앨범 타이틀 곡 ‘라 프에르타(La Puerta)’는 가슴을 가벼이 스치듯 어느새 사라집니다. 음악과 마음, 서로 깊숙이 조우하는 짧고도 강렬한 찰나에!
“악기가 나를 비추는 경험을 자주한다. 체온으로 만나려하고 느낌으로 나를 이끈다. 진정한 음색은 이런 뜨거운 만남에서 탄생한다.” 반도네오니스트 진선(27). 반도네온은 독일 지방교회서 오르간 대용으로 사용하다가 아르헨티나 이민자들 사이 넘어오게 되면서 탱고의 중심이 된 악기. 아코디언이 몸의 상체에 안정되게 고정하여 연주하는 것과 달리 반도네온은 허벅지에 올려놓고 몸 중심을 이용해 연주한다.
열일곱 살 때 아코디언을 하던 친구를 기다리다 멜로디가 너무 좋아 푹 빠졌다. 가르치던 선생이 2개월이 고비라고 했는데 7년이 지날 즈음 아주 우연히 인연이 시작됐다. “어느 페스티벌 연주회였다. 아코디언 하는 모습을 보고 소속사 관계자가 음반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무심히 얹었는데 그날 밤 전율에 온 몸을 떨었다. 아코디언이 가볍고 밝은 음색이라면 반도네온은 오랜 세월처럼 구슬픈 가운데 소리의 깊이감이 느껴져 왔다. 확신이란 그렇게 오는 것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CD가 닳을 때 까지 들었다.”
그녀는 음악 할 때 악기와 서로의 호흡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흔들리면 어떤 곡을 연주하더라도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항상 진심으로 다가가려 애쓴다. 그러면 언젠가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연주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 연주는 무대 위에서 꿈을 꾼 듯,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런 몰입일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반도네온연주의 거장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바친의 꼬마아이(Chiquilin de Bacin)’를 가장 애착이가는 곡이라고 했다. 잔잔하면서도 탱고특유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데 음반에 수록했다. “술집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꽃 파는 꼬마아이의 이야기다. 늘 배고픔과 슬픔에 잠긴 채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소년에게 희망의 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곡이다. 연주하면서 아이의 현실적인 비애와 고독을 마음깊이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굳이 음색의 특징을 구분하자면 유럽은 긍정적이며 서정적 분위기이고 남미는 공격적이면서 애수가 담긴 듯 하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두 색깔을 다 소화해내는 연주자이기를 바란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년 3월1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