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환풍경, 163×120㎝
하룻밤사이 생겨나다니, 물방울이여. 조는 듯 안개 걷히니 막 파랑(波浪)에 떨어지려는 덧없는 편력(遍歷)이여. 아, 불쑥 눈물이 날 듯 기꺼워라.
빛나는 찬사처럼 균등한 약속처럼 파란 물결이 밀려오던 아침. 꿈을 실어 나르는 달팽이는 그 느린 걸음에도 어떻게 심해(深海) 고래의 전설을 전했을까. 어린 손등처럼 뽀얀 결로 다가와 청정한 양식을 한량없이 전하는 파도여! 바람을 다스리는 풍륜(風輪)이 나를 휘감다 지나갔다.
나(個我)는 바람이다. 누구나 꿈을 꾸듯, 지나던 사문(沙門)이 허리가 깊게 패인 자작나무의 위태로운 상처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픔은 아물 것이라 위로했다. 낯섦. 이채로움의 풍경. 일상적 관념의 해체…. 사문은 몇 개의 나무의미를 강화시키고 홀연 사라졌다. 모름지기 ‘뒤바뀐 생각이 곧 오염이니 뒤바뀐 생각이 없는 것이 본성’이라는 유마경(維摩經)의 글귀도 함께 남기고서.
95×85㎝
나무가 본 것은 무엇일까. 아니 무얼 말하려는가. 견고한 믿음처럼 한 곳에 서서 저 푸른 바다 속 그리움처럼 불현 듯 불쑥 솟아나는 산, 고래, 달과 태양, 어떤 꿈을 기다리는 것인가.
유리알처럼 반질반질한 조약돌. 맨발로 걸을 때마다 짜그락짜그락하는 발자국 소리에 ‘바보스럽지만 너다웠어. 난 그런 것이 맘에 들어’라던 젊은 날 시린 풋사랑의 올망졸망한 언어들이 팝콘처럼 돌 틈 사이 톡톡 튀어 올랐다. “그대 철없어 내 입안엔 신 살구내음만 가득하고 몸은 파계한 젊은 중 같아 신열이 오르니 그립다고 그립다고 몸써리치랴/오 빌어먹을,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두고 온 사내” <김사인 詩, 예래 바다에 묻다>
은유적 풍경, 90×73㎝ oil on canvas, 2012
◇동틀 무렵, 연잎에 구르는 동그란 집착
편평한 대지의 끝, 하늘 맞닿은 지평선. 저 멀리 미묘한 곡선의 정적으로 남겨둔 장엄한 산. 길 위에 미망(迷妄)의 걸음이 여명의 공기를 가른다. 누가 보고 싶어, 무엇에 반해 새벽 잠 깨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첩첩산중으로 가는 산언덕 길목 뿌옇게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안개가 걷힐 때 ‘누구나 자신의 뒷모습을 못 보는 것’이라며 무리지어 핀 진분홍 백일홍이 일러 주었다.
산이 뿜는 신선하고도 차가운 공기, 다함없는 배품의 회향(廻向)이 역설의 신비를 일깨워 준다. 그 갈래를 따라 들어가면 필연의 근원을 만날까. 명징한 해답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명료한 것은 없는데 존재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오오, 무명(無明)의 집착을 녹여줄 저 떠오르는 태양의 불길 속으로 “멀리멀리 가는 나의 한숨/길이여 누설된 신비여.”<정현종 詩, 길의 神秘>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년 7월26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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