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우상호 |욕심 버리면 솟는 희망의 깊이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7. 3. 00:27

 

 Dokdo·lighthouse, 91×73acrylic on canvas, 2010

 

 

 

흑과 백, 그 속에 녹아든 시간의 궤적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히는 밀물이 뭍으로까지 와 비로소 소리를 내기까지 심연의 바다에서 처절한 몸부림과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귀항은 없었을 것이다. 썰물의 파상(波狀)은 한 아름 고독의 이야기지만 바로 그것이 스스로를 지탱해온 바다라는 이름의 우렁찬 잠언이기도 하다.

 

휘영청,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정월(正月) 대보름 보름달이 바다에 드리운다. 물결에 실린 빛의 파동은 넘실거릴 때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 광선이 사연을 쏟아내 마음의 경계 없는 낙원을 꿈꾸게 한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 세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알갱이 원자가 흐름으로써 어둠 밝히는 빛을 내는 전기처럼 그럼으로 당신이 한발씩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일고 마음속 그곳엔 낮이면 숨어버린 별들이 있음을 .

 

 

 

 

city, 120×60acrylic on panel, 2010

 

 

 

잊혀진 일상 일깨우는 상념

 

등대는 불빛이 잠깐씩 멈추면 마치 갑옷을 입은 장군이 바다를 홀로 지키는 듯 등 형체만이 보일 듯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동해 바다 물결 위로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흰 바탕의 한 가운데 적색과 청색이 새겨지고 건곤감리가 아로새겨지면 어둠과 빛을 포용한 태극기는 홀연히 솟아올라 쉰 새벽을 일깨운다.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화면. 전통 칠화(漆畵)기법에 현대적 재료를 적용하여 수없는 덧칠로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공간엔 무한한 깊이감이 녹아 있다. 작가는 우주 만물이 생긴 근원, 태극(太極)은 만물의 원시 상태다. 물질을 노출시키는 모든 빛을 차단한 공간을 통해 무엇이 진정 우리에게 소중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시간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독도는 존재를 재 증명하는 동시에 역사적 가치를 인식시킨다. “바람의 세월 몇천 년 동안/오직 그곳만이 파도소리에 묻혀/그 누구도 태어나지 않는 곳/먼 곳 자지러지게 떠도는 동안/그 누구에게도 끝내 고향이었다 오오 동해 독도”(고은 시, 독도 중에서)

 

 

 

 

alley, 120×80acrylic on panel, 2010

 

 

 

상상과 희망을 주는

 

사람은 빛 가운데서 살아간다. 빛을 새로이 만들고 향유하고 점점 더 많이 소유하게 된 빛의 과다는 그러나 인간을 변화시켰고 눈이 부시면 상실하게 되는 것도 커져갔다. 작가는빛을 꼭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버려야 했다. 아니 빛이 없는 곳에 옮겨 놓는 게 더 현명하리라. 빛이 옮겨진 어둡고 깊은 빈 공간에서 그 동안 잊었던 상상을 되찾고 새로운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고 뒤돌아보았다.

 

빛이 차단된 어두움은 인간의 눈으로 본 것일 뿐 만물은 모두 거기에 들어있다. 그는 그것을 본 것이다. 욕심을 버리자는 의미로, 그러기에 우상호의 어두움은 되찾은 상상과 새로운 희망의 대상으로의 깊이다. 그 어두움은 시간의 함축과 존재를 사소한 일상들과 흑백의 미감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공간 해석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획득한 그런 사소함이다.

 

또 정작 중요한 것을 사소함으로 보고 있는 우()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골목길이나, 전선이 팽팽하게 이어진 도시의 산업현장도 이 연장선에서 연동되어 희망이 되고 예찬된다. 그의 작가노트에는 연필로 이렇게 메모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맙고 고마우면 표현해야 한다. 지금부터라고.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20101230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