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화가탐방

[권동철의 화가탐방]목판화 특유의 단순명료한 칼날 ‘자국’[Thoughts on the woodcut of Jo Hyang Sook,임영길 평론②,화가 조향숙,조향숙 작가,Yim Young Kil]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9. 30. 20:44

도판02.1∼02.3. 정관자득(靜觀自得), 50×60㎝(each), wood cut, 2009. 사진제공=임영길.

 

 

목판화 특유의 단순명료한 칼날 ‘자국’

 

한국현대판화는 195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고판화 기술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근대판화 이래로 단절되었던 현대판화를 순조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국의 현대판화는 몇 가지 갈래로 전개되었는데, 초기에 일본의 창작판화를 수학한 최영림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서 받아들인 것과 조금 더 늦은 시기에는 자생적으로 생겨난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들이 서구에서 수학한 작가들과 함께 활동한 것이 있다,

 

주로 회화작품을 병행한 이들은 판화를 복수성보다는 표현 기법적인 측면으로 인식한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에는 중국의 신흥목판화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민중판화가 있는데 이들은 판화가 가진 표현상의 특성과 복수성을 적극 활용해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에 더해 또 다른 갈래를 상정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현대판화의 도입과정을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다.

 

조향숙은 대학에서 최영림에게 판화를 배웠으나, 석도륜에게 목판화를 사사 받았다. 조향숙에게 목판화를 가르친 석도륜이 또 다른 현대판화의 수원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판화에서 현대판화로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석도륜은 일본에서 수학한 후에 귀국해서 전각과 목판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본인이 자신의 작품을 후세에 전하기를 꺼려서 현재 남은 목판화 작품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의 목판화는 향토적 서정성이 깃든 최영림과는 대조적으로 마치 작두와 같은 칼의 절제된 힘으로 나타난다.

 

칼의 한 획으로 인하여 형태의 단순함과 날카로움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단순하고 강직한 판각 이미지는 김상구의 초기 작품과 오윤, 그리고 조각가인 최종태의 목판화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석도륜 목판화의 특성은 그대로 조향숙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녀의 중기 작품들에서 잘 나타난다. 조향숙의 중기 작품인 2011년 작 <정관자득> 연작은 물 아래로부터 표류하듯이 떠오르는 바위의 모습에서 고요함과 숙연한 ‘회상적 심상’을 자아낸다.(도판02.1∼02.3. 조향숙, 정관자득)

 

도판03 석가십대제자상, 140×500㎝ 널목판화, 2001. 사진제공=임영길.

 

 

수면 밑에 가려진 적막함은 칼날에 의한 상처의 근원을 잠재운다. 이러한 감성은 목판화 특유의 단순명료한 칼날 ‘자국’으로 경계를 이룬 판재 면이 도침한 팽팽한 표면의 한지와 만나 견고한 판화의 형식을 취한다. 이는 목판화가 지닌 물성적 감성의 익숙함을 전하면서 예리한 칼날 끝으로 새긴 예각의 획들을 ‘찌르는’듯한 긴장된 감수성을 전하고 있다.(도판03. 조향숙, 석가십대제자상)

 

최근에 그녀의 목판화 작품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인생관과 감성도 변하고 시대의 조건 또한 달라졌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판화에서의 형식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한, 기억 속의 일상적인 소재들의 도입과 조화로운 배치로 보다 완숙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글·도판제공=임영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교수, 2020.12.

Writing and fig=Yim Young Kil, professor of printmaking College of Fine Arts Hongik University, 2020.12.

▲[한글평론 원제목]우리 전통의 정신과 형식에서 지속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행복한 기억들”연작–조향숙의 목판화에 대한 단상(斷想)들-

[English criticism title]The Series “To Find Lost Time-Happy memories”, Continued in the Spirit and the Form of Korean Tradition–Thoughts on the woodcut of Jo Hyang Sook-

▲자료출처= Jo Hyang Sook, To Find Lost Time-Happy memories(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행복한 기억), 2020. 12.2~7. 선 아트센터(SUN ART CENTER)개인전 도록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