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f SEOUL 2023’특별전으로 9월6일부터 9일까지 코엑스 동문게이트 로비 ‘섹터 B,C’에서 열리는 ‘박래현과 박생광–그대로의 색깔 고향’특별전이 주목받고 있다. 채색중심 한국전통회화의 영광을 재음미하고자 기획 된 이번전시는 두 작가의 수작 40여점으로 구성했다. 전시명은 박생광의 아호 ‘그대로’와 박래현의 아호 ‘비의 고향(雨鄕)’에서 따왔다. 이번 전시는 윤범모(前국립현대미술관 관장,미술사가)총괄기획, 큐레이터 김윤섭(아이프 미술경영연구소대표,미술평론가)기획, 가나문화재단 및 주영갤러리가 후원했다. 박래현, 박생광 화백 작품세계를 2회에 걸쳐 기획했다.<편집자 주>
채색화 여성미술의 잔치
글=윤범모 미술평론가
우향 박래현(雨鄕 朴崍賢,1920~1976)은 1960년대 새로운 화풍으로 당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로 부상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래현은 청각장애의 운보 김기창 화가의 아내로서 그야말로 삼중통역자 노릇을 잘했다. 외국 여행이라도 가면 장애의 운보를 위하여 한국어, 영어, 그리고 구화(口話)의 삼중 통역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래현은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사회적 칭송도 자자했다. 그는 봉건 사회의 잔재가 남은 풍토에서 여성작가로서 고난의 세월을 헤쳐 나갔다. 그 결과 20세기 한국의 대표 여성 화가로 부상될 수 있었다.
나는 1980년대 중반 중앙일보사 신사옥에서 개관한 미술전시관의 실무 책임자로 일했다. (개관 당시의 명칭은 중앙일보사의 직영이어서 중앙갤러리였으나, 곧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아호를 따 호암갤러리로 개칭했다. 뒤에 삼성미술문화재단 소속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바뀌었다.) 개관 당시 우리 미술계는 큐레이터라는 용어도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조차 아직 학예실이라는 직제를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전시기획자로서 다양한 전시를 추진했다. 그런 가운데 박래현 회고전을 주최했다. 1985년 10주기 회고전 형식으로 박래현 예술을 대규모로 집대성한 전시였다.
내가 운보 김기창 화백과 가까워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우리는 필담으로 대화를 하다가 친해진 뒤에는 필기구가 필요 없어졌고, 뒤에 운보는 나의 소리 없는 입 모양만 보고도 말의 뜻을 이해했다. 호암의 박래현 전시는 채색화 혹은 여성미술의 잔치와 같았다. 2020년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덕수궁관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박래현 회고전을 대규모로 개최했다. 이 전시는 의도적으로 김기창의 그늘을 삭제하고 순수하게 박래현 예술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그 결과 박래현 예술의 진면목을 여실하게 드러낼 수 있었고, 이는 박래현 재조명에 기여도를 높이게 했다. 한마디로 근대기 한국여성미술의 최고봉이 박래현임을 확인하게 했다. 정말 그랬다. 덕수궁 전시는 연고가 있는 청주관으로 옮겨 앙코르 쇼를 하여 계속 각광을 받았다.
박래현의 생애에서 중요한 계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 가운데 1956년은 주목할 만하다. 이 해 화가는 대한미협전에 <이른 아침>을, 그리고 국전에 <노점>을 출품하여 각각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들 수상작은 새로운 화풍의 시도로서 구습에 젖어 있던 당대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실 생활을 주목하면서 화면 구성의 짜임새와 입체파적 분위기의 인물 표현, 그리고 유려한 선의 구사와 안정감 있는 색채 구사 등 걸작이었다. 일본화풍은 물론 고답적 중국 문인화풍으로부터도 벗어난 독자적 세계였다.
박래현은 해방 이후 김기창과 거의 매년 부부전시를 개최했다. 1947년 제1회전을 시작하여 1971년까지 12회를 개최했다. 이들 부부는 전통 화단에서 이색적 존재였다. 그래도 ‘운보의 그늘’은 늘 따라다녀 마침내 박래현의 뉴욕 ‘탈출’ 을 단행하게 했다. 그는 1969년부터 73년까지 뉴욕에서 새로운 기법의 판화 작업을 하면서, 또 남미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갔다. 뒤에 그는 구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순수 추상회화 작업을 했다. 구성의 아름다움 그리고 색채 감각, 이는 독보적 세계에의 진입이었다. 특히 멍석이나 엽전 꾸러미 같다는 색깔 띠 작업은 단연 돋보였다. 이 같은 색띠 작업은 시각적 아름다움 이외 상징성을 읽게 한다. 나이테 그리고 여체 혹은 임신 같은 분위기도 자아내지만, 나는 이들 색띠 작업에서 ‘생명성’이라는 상징을 읽고 있다. 여성 화가의 새로운 도전, 그것은 생명 외경의 사상을 기본으로 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우향 박래현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
경성사범대학교, 일본여자미술전문학교.
봅 블렉번 판화연구소 및 뉴욕 프래트그래픽센터 수학.
성신여자사범대학교 교수 역임.
주요 개인전
2020 탄생 100주년: 삼중통역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995 시옴 화랑
1974 신세계 미술관
주요 단체전
2023 위대한 만남, 그대로·우향, 예술의 전당
2001 채색의 숨결-그 아름다움과 힘, 가나아트센터
2000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 국립현대미술관
1998 한국 근대미술: 수묵, 채색화-근대를 보는 눈, 국립현대미술관
1995 현대미술 5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1986 한국화 100년전, 호암갤러리
1985 유작전, 호암미술관
1978 유작전, 국립현대미술관
1973 마이애미 그래픽 비엔날레, 미국 플로리다 미술관
1972 한국 근대미술 6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1967 제9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국제전, 상파울로
1957 백양회 창립전, 화신백화점 화랑
[자료 및 이미지출처=Kiaf SEOUL NEWS LETTER, SPECIAL EXHIBITION 3 박래현과 박생광 | 그대로의 색깔 고향]
[정리=권동철, 9월4일 2023,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