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ART]한국화가 송수련‥정신과 마음의 운필 침묵의 뉘앙스
순수한 붓놀림의 일필(一筆), 현대적인 독창적회화미의 한국화 탄생
“집은 한 척의 배처럼 바람 속에서 소리 내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돛들이 부풀어 오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깃발들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대 무릎위에 이 싱싱한 장미 묶음을 간직해 주오. 그대의 모인 두 손 안에서 내 마음 눈물짓게 해 주오.”<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Les Regrets Reveries Couleur Du Temps),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著, 들판에 부는 해풍(海風) 中, 이건수 옮김, 민음사刊>
태양의 열기가 수직으로 꽂힌 황망한 대지를 지나간 바람의 자국인가. 군데군데 패어있는 풍화의 비문(碑文)을 어루만지듯 어디선가 끝없이 암벽에 부딪히는 망망대해의 포말이 멀고도 가까이 반복됐다. 무어라 말을 건넬 듯 마른 침을 삼키듯 침묵하는 되풀이가 평안한 리듬의 윤회(輪廻)로 인도하는 것은 또 무슨 내력일까.
흐르는 물처럼 무작위(無作爲)로 맡긴 종이에 생명체의 흰 뼈대, 겹겹 퇴적빛깔처럼 먹이 스며든다. 광목(廣木)의 자연스런 구김처럼, 농도를 맞춘 먹물에 적신 쭉쭉 찢은 한지(韓紙)를 두껍고 질긴 장지 위에 일일이 붙여나가는 지난한 수행(修行)….
“거침이 없는 편안한 이어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내 자신이 뛰놀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그렇게 가다보면 매듭지어지는 부분이 있듯 삶이라는 것 또한 아픔도 쉼도 만나는 노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의식과 독창적 회화미의 서예성
화면은 절망의 강을 건너 새로운 내일을 향하는 가교처럼 한지 띠로 구축된다. 밑그림은 서체 글씨 같기도 하고 먹물덩어리 같이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그 중에서 ‘人’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활력을 전하는 신체율동 등이 내포된 뉘앙스의 필선(筆線)을 전부 덮지 않고 드러내 주고 싶은 것만 슬쩍슬쩍 내보였다. 얽매임이 없는 순수한 붓놀림의 일필(一筆)과 어우러지며 현대적인 독창적회화미의 한국화를 탄생시켜내고 있는 것이다.
“서예가 무불(無不) 선주석(宣柱石)선생이 생전 어느 날 ‘평소에 연습지는 모두 불태웠었는데 혹 필요하지 않느냐’라고 물어왔었다. 그래서 받아놓은 종이뭉치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극도의 절제로 나를 다스려야만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선생의 필법호흡이 투영된 종이를 바탕으로 작업했다. 지난해 마지막 3장 남겨놓은 것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장으로 작업한 것이 ‘내적시선(70×140㎝)’이다.”
이와 함께 고봉준령의 골격이 드러나는 가파른 산맥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아늑한 마을의 뒷산, 병풍 같은 숲길에 저녁 새들의 노래 청아하게 들리는 듯하다. 마음속에 내재된 무작위의 선(線)이 풀어낸 해우(解憂)의 기록인가. 동일한 것이라고는 없는 염원의 기도문 같은 저 찰나의 필선이 진정 삼라만상의 가없는 운율은 아닐까!
송수련 작가는 “평소에 감동받았던 자연의 선을 다시 재현한다고 할까. 그냥 나한테 반복되어 들어와 남은 엑기스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나한다. 나는 그림이 솔직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정신과 마음이 드러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충실하게 열심히 토해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권동철 미술전문위원 미술칼럼니스트, 인사이트코리아 202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