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각가 박석원, “가장 순수하고 간결한 의미만이 가지런히 남는다”
“조각 작업이라는 것 자체가 가장 바닥에서 일하는 곳이다. 끊임없이 작업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몸부림친다고 할까. 투쟁하고 경쟁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고 탐색해가는 관계성에 조각가의 인생이 놓여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태양은 뜨겁고 무성한 나뭇잎들조차 움직임이 없는 듯 성하(盛夏)의 오후, 경기고양시 덕양구 소재 조각가 박석원 작업실엔 재료뿐만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갖가지 공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먼저 작품 ‘焦土(초토)’는 1968년 국전 수상작으로 조각가 박석원 초기의 수작으로 꼽히는데 이일 미술평론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조각은 일종의 앵포르멜적 추상조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어떤 원형은 있기는 하되 그것이 오랜 풍상에 부식된 듯 남아 있는 덩어리는 그 원형의 비정형 잔상뿐이다.”
박석원 작가는 1974년 명동화랑 첫 개인전 이후 75~99년까지 ‘에꼴 드 서울(Ecole de Seoul)’멤버로 활동했다. 80년 일본 동경 ‘村松畵廊(MURAMATSU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같은 화랑의 옆 공간에 단색화가 최명영 작가가 개인전을 가졌었다. 또 ‘한·일 현대조각교류전’은 1982~91년까지 후쿠오카와 한국에서 전개됐다.
“작가들의 힘으로 10년 약속을 하고 서로 오가며 발표했었는데 그것을 지켰다는 뿌듯함이 있다. 나 역시 자신 있게 프라이드를 가지고 출품했다.” 이와 함께 1991년 인공갤러리 개인전에서는 특히 돌 작업의 성수기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의미가 컸고 93년 토탈미술관 개인전에서 발표한 ‘積意(적의)’시리즈는 가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김용대 미술평론가(전 부산시립미술관장)는 “대형 화강암에 의해서 만들어진 미묘한 틈새의 공간을, 타자의 입장에서 해석하였으며 ‘비어있음을 비어있음으로 보지 않고 생성하는 공간’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거대한 매스를 가진 조각 속에서 섬세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연출해 내는 ‘박석원의 의도에 의해 가공된 기하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라고 평했다.
한편 한국현대추상조각의 선각자 박석원(1942~)은 경남진해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각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홍익대교수를 역임했다. 신인예술상 수석상(국립현대미술관,1963), 17~18회 국전(國展) 국회의장 상(국립현대미술관, 68-69), 김세중 조각상(92), 김수근 문화상(95), 문신미술상(2010) 등 다수 수상했다.
그는(朴石元,PARK SUK WON,박석원 작가) “2004년 그리스아테네올림픽 때 초대되어 아테네 자유공원 인근에 ‘축적-9909’전시와 2008년 초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朴石元 조각의 45년, 積+意’개인전도 뜻깊은 전시 중 하나로 기억 된다”라고 회상했다.
이와 함께 ‘예술관’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인생에서 간결하고 단순한, 가장 순수한 의미만이 가지런히 남는다고 생각한다. 조각 작품이란 확실한 현실의 바탕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러나 어떻게 보면 황망하기도 하지만 전혀 예기치 않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2020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