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야금모행, 45.5×53㎝ Mixed media on canvas, 2018
마음의 관능 사랑의 이동
“마치 하늘이 대지에 고요히 입맞춤하고 있는 것 같다. 대지에 드리워진 꽃의 기울어진 빛 속에서 하늘의 것만을 꿈꾸려 하는 것처럼. 대기는 들판을 빠져나가고, 이삭은 청명하게 물결치며, 숲은 미약하게 소리 내며, 밤은 별빛에 차갑게 걸쳐있다. 그리하여 나의 혼은 그 나래를 넓게 펼치고, 고요한 대지 위를 날아간다. 마치 자신의 집으로 날아가는 것처럼.”<슈만(Schumann)가곡집 작품39 中, 아이헨도르프(Eichendorff)詩-달밤, 태림스코어刊>
숙명의 밤은 은밀히 깊어 가는가. 청사초롱을 빼닮은 등화(燈火)가 여인의 핑크빛 개두(蓋頭)를 더더욱 고혹한 빛깔로 물들이는 밤의 정취(靜趣)이어라. 휘황찬란한 달빛 속 몽환적 자태의 여인은 상상력을 배가시키고 흰 머릿결 아슴아슴한 여인의 동공을 따라 먼먼 기억의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아 악기를 연주하며 행복한 시간을 즐겼던 시절이 언제였었나!
“새는 먼먼 시간의 역사라는 강(江)을 건너온 전령이다. 이승과 저승,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상징적 존재로 여인의 동반자다. 블링블링한 자수(刺繡)를 오브제로 운용함으로써 현대여인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과거의 기억이 반짝이며 해후하는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환생-탄금도, 91×72.7㎝, 2019
◇환상미, 여인의 내면
꽃향기에 취한 외롭고 쓸쓸한 여운, 충족감에 젖은 몽환적 표정, 싱그러운 살빛을 드러내는 한창때의 여인…. 다분히 극적(劇的)뉘앙스를 풍기는 화면은 여인의 미묘한 센스와 신비로운 심리적 묘사로 가득하다.
위트와 나르시시즘적인 성정으로 끌어들이는 오묘한 메시지는 감각선율의 들뜨는 감흥의 파랑(波浪)으로 마음반응의 단초를 제공한다. 조선후기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의 에로틱한 풍속화를 차용한 ‘환생’시리즈는 어떤 상관성의 일체감을 통하여 현대적 미감으로 살아나 시공을 초월한 동시성(simultaneity)의 존재로 재회하고 있는 것이다.
내적 미(美)의 지향을 비추어 주는 해맑은 거울 같은 화면은 온전하게 고스란히 자신만의 환상세계를 보여주고 내면을 파고드는 즉감(卽感)의 이데아를 선사한다. 공간처리의 색감은 작가 특유의 색채운용을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를 융합하는 매혹의 순간들, 저마다의 기억, 멜로디, 한 문장의 시, 영화처럼의 잊을 수 없는 생의 한 장면 등 마음의 공감으로 승화되는 인상의 동기를 제공한다.
환생-월하정인, 45.5×53㎝ Mixed media on canvas, 2018
그러나 실상 미적흐름을 포착해 내는 감각성은 궁극적으로 성(聖)과 속(俗), 숭고미와 욕망이라는 여인의 진솔하고도 순결한 심리묘사에 있다. 이른바 환상미(幻想美)로 압축될 수 있는 예술관이야말로 임혜영 작가(여류중견화가 임혜영,ARTIST LIM HAE YOUNG)의 ‘환상’시리즈에 스미어 있는 에토스(ethos)이다.
꽃과 음악, 도발과 유혹, 아슬아슬한 밀당의 낭만 등 화면에 드러나 보이는 이미지 너머 은미 (隱微)한 화법에 닿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량한 생의 번뇌 속 여인이 꿈꾸는 영원의 감수성은 어느 곳을 향하는가.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생명성이라는 이른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백한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인의 무한한 내면적 감성을 통합적인 관능체로서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환생’시리즈가 주목받는 매혹의 망울이기 때문이다.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202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