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 김영기 화백, 1985년 <사진제공:송수련>
[나의일상 나의회화]송수련⑤‥한강과 주변 자연의 색
◇일랑 이종상 선생님과의 만남이 시작된 것이 그때인가요?
네, 실기대회에서 성적이 신통치 않으니까 돌아가신 어머니가 과외를 할 화실을 물색한 거죠. 과외가 보편적인 시절이 아닐 때라 그냥 혼자서 그림을 그리다가 처음으로 화실에 나가서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구요.
선생님의 작업실이 가까운 동네에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어요. 선생님께서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오고가면서 눈여겨보신 모양이에요. 우연인지 선생님은 어머니와 같은 광주 이가(家)로 항렬까지 같았어요. 선생님이 제 사정을 들으시더니 동양화사군자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시더군요. 그게 한국화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이종상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회화과로 입학해서 동양화를 전공 하셨어요 동·서양화에 두루 능하신 선생님께서 30-5074 그림을 그려오라고 과제를 내주시면, 번호를 매겨가며 동이 틀 때까지 그려갔어요. 늘 주문하신 것 이상으로 많이 그려갔는데, 칭찬을 받기는커녕 '재주 부리지 말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제가 혹시라도 지나치게 멋을 부릴까 싶어 경계를 시키신 게 아닌
가 싶어요. 전통을 이어나가려면 기본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점을 그때 선생님께 배웠어요.
◇선생님과의 만남이 우리의 전통 한국화에 입문하는 계기가 된 것이군요?
한국화에 대한 기초를 탄탄히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은 조선의 마지막 화원이셨던 이당 김은호 선생님의 수제자이셨기에, 전통회화에 관한 한 제가 최고의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는 행운을 누린 것이죠.
이런 인연으로 선생님께서 작업하시는 과정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믿 그림을 그린 뒤 다시 본 작업을 하는 과정의 세심함을 배웠지요. 그때 선생님의 작업이 한복을 입은 세 명의 단아한 여인을 멋진 선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그 그림을 미술관에서 보았어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가 입시를 위한 미술 실기의 감을 잡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렇게 실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면 다른 진로를 꿈꿔볼 수도 있어 을 텐데요?
글쎄 말이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진로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다닌 창덕여중·고 강당 양쪽 벽에 양화가 윤중식 선생님의 반추상 그림이 걸려 있었거든요. 오렌지, 레드, 옐로우, 올리브그린 등의 색이 섞인 노을 풍경이에요. 그 그림을 보면 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흥이 일었어요. 재주는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림이 천직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졸업 시즌에 차가운 겨울 땅바닥에 동백꽃과 금잔화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주워와 화병에 꽂아둔 일이 있어요. 사람들 발에 살짝 밟히기도 했는지 상태가 깨끗하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짓밟힌 채 얼어 죽는게 안타까웠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정성을 다하면 교감할 수있을 것 같은 살아나길 기원하는 내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턱없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것이 정말 강렬한, 어쩌면 가장 기쁠 수도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요즘 연잎이나 다른 나뭇잎을 종이에 붙이는 작업을 하고 계신데, 식물에 대한 애착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군요?
네. 그런데 그것이 꼭 식물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그 안의 어떤 것, 즉 색이나 잎맥의 모양 혹은 줄기로 이어진 어떤 형태 같은 것들을 유심히 본 것이에요. 특히 장소에 따라서, 또는 어떤 생각을 갖고 내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기억할 수 있는지에 의미를 두었다고 할까요. 내게는 그게 더 핵심적으로 보였어요.
예를 들면, 아버지의 서재에서 한강이 저 아래로 내려다보였는데, 지금도 그 물의 빛깔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석양이 지는 무렵이면 붉게 물들어가던 모습, 시간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변하던 풍경 말이에요.
그게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지, 나는 결혼을 한 뒤에 어느 날부터 내 안이 텅 빈 듯한 결핍을 느꼈거든요. 나중에야 그것이 한강의 색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한강의 색, 한강과 주변 자연의 색이 떠오르자 숨이 막힐 듯이 간절하게 그리웠으니까요.
△글=박철화, 중앙대학교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정리=권동철/2020년 1월19일 이코노믹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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