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淸音), 94×325㎝(8폭 병풍), 종이에 수묵담채, 1971년<남농기념관>
淸美의 산하 雄渾한 필법
“나는 그림 농사짓는 남농이여. 방방곡곡을 누비며 자연과 멋에 취해 80평생을
화지(畫紙)위에서 붓 춤만 추었지.”<남농 어록 中>
어느 이른 봄날, 오래된 마을에 따스한 햇살이 드리워진 한낮쯤인가 보다. 풍상의 세월을 덤덤하게 껴안은 바위는 산마을의 튼튼한 버팀돌처럼 우람하게 엉켜있다. 그 견실한 지반위에 수줍음도 없이 홀로 만개한 산목련은 비스듬히 가지를 뻗어 우아함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농부가 소를 앞세워 겨우내 굳었던 밭고랑을 탈 때마다 적토(赤土)가 속살을 드러내며 새봄을 알린다. 그야말로 근심걱정 없는 평화로운 낙원의 풍경은 가슴 따뜻해 오는 유년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여 불현 듯 무릉도원의 삶을 헤아리게 한다.
산사(山寺), 147×64.5㎝, 1971년<석난영 소장>
“남농의 산수화를 보면 마치 목포를 중심으로 한 영암, 해남, 진도 지역의 산세나 해안과 비슷하여 다도해의 실경을 떠올리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진처럼 똑같은 장면은 드물다. 왜냐하면 실경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상화시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농의 산수화는 이상적 실경을 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친숙한 장면이지만 딱히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곳이다.”<조인수, 한국종합예술학교 미술이론과 교수>
송죽도(松竹圖), 124×62㎝, 종이에 수묵담채, 1970년<목포우체국 소장>
소나무는 이른바 ‘남농송(南農松)’이라고 불릴 만큼 주요 화제(畵題) 중 하나다. 남농(南農,NAMNONG) 허건(許楗, 1908~1987)은 예순 후반부터 이를 즐겨 그렸는데 그 의미를 남겼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해풍에 우는 노송의 소리 때문에 소나무를 즐겨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풍에도 꿋꿋한 세한의 소나무도 좋아하지만 뜨거운 여름날 태양에 시들지 않고 소소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성하 속의 노송을 더 아끼고 사랑한다.”<전남매일신문, 1973/南農, 김상엽 글, 남농미술문화재단刊>>
산수(山水), 28.5×124㎝, 비단에 수묵담채, 1937년<세종화랑 소장>
◇한국의 풍경 그 정감의 승화
남농은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난 한국적인 선(線)”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결실이 신남화(新南畵)다. “신남화는 한국의 산수를 사생하여 한국의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흐뭇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우리의 농촌풍경, 남도의 따스하고 포근한 정서와 물새 노니는 수향 등을 직접 스케치하여 한국 풍경을 그리자는 것이지요. 순수한 우리 강산의 맑고 아름다운 정취를 보여주고 싶어요.”라는 어록을 남겼다.
조춘고동(早春古洞), 94.5×280.5㎝ 종이에 수묵채색, 1951<남농기념관>
△글=권동철/인사이트코리아 201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