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화백은 “유학시절 하나님을 만난 영적체험 이후 진실한 크리스천표현주의성향을 띈 작품으로 180도 달라져갔다”라고 말했다. <사진:권동철>
[인터뷰]“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힘” [①:1970~1992년]
‘이정연 회화40년’展, 11월27~12월4일, 서울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
이정연 화백은 “유학시절 하나님을 만난 영적체험 이후 진실한 크리스천표현주의성향을 띈 작품으로 180도 달라져갔다”라고 말했다. 만추의 햇살이 느릿하게 배회하듯 평온의 시간으로 인도했다. ‘이정연 회화40년’ 개인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1~2층 전관에서 11월27일부터 12월4일까지(Art of Jeong-Yoen Rhee, 40year-Hangaram Art Museum at Seoul Arts Center Exhibition Room 1~2, - 27-Dec. 4) 작가의 혼(魂)이 녹아있는 작품을 총망라한다. 이정연 작가(ARTIST RHEE JEONG YOEN)와 예술의전당 조용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46×197㎝(each)×12, 병풍12폭, 1975
-‘이정연 회화40년’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2년 전에 삼성디자인학교 SADI(사디,Samsung Art & Design Institute)에서 부학장으로 재직, 정년 했는데 열성적으로 가르치다가 퇴임하면서 조금 의욕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동안 개인전을 40여회 했는데 이화여고 동창이나 친지들에게 작품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어서 주변서 ‘작품 한번 보여줘라’하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요. 그러는 가운데 의사인 남편(박규래 정형외과의원 원장)이 적극적으로 용기를 주어 이뤄지게 됐습니다.
(왼쪽)120×170㎝ 화선지에 수간채색, 1975(제24회 국전입선작품)
(오른쪽)120×168㎝ 화선지에 수간채색, 1976(제25회 국전입선작품)
-전시작품구성을 소개해 주십시오.
사실 1970년대 작품은 남아있는 게 많지가 않아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졸업전(展)작품과 사군자병풍, 75~76년 연이어 2회 국전(國展)에 입선한 작품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학시절의 판화와 서양화작업, 93년 귀국하여 장지에 먹을 운용한 추상화 등을 전시합니다. 귀국해서 원주서 결혼하였는데 그곳 지인들이 천년이 지나도 그대로 보존된다는 옻을 추천해 주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릇에 흙이 묻어있는데 시골담벼락의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었죠. ‘저거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영감을 얻은 삼베에 옻칠한 건칠기법작품과 신작도 함께 합니다.
76×61㎝ 캔버스에 유화, 1989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대학원과 콜롬비아대학원에서 공부하셨는데요.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프랫(Pratt Institute)에서는 주로 판화와 유화, 아크릴 릭, 사진, 도자기 등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판화과 조교였는데 에칭(etching)하면서 산(酸)을 담그고 녹이는 과정에서 학교 건물이 오래돼 거기서 종일 작업하면 머리가 멍하고 몸이 많이 아프고 피곤했었죠. 그런 공간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몸에는 안 좋았지만 열정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그림을 보면 자유로워요. 화랑이나 뮤지엄 등을 다니면서 신선한 자극을 많이 받았지요.
콜롬비아대(Columbia University)에서는 학생들을 상대로 그림을 가지고 인터뷰하는 것을 많이 했었어요. 아이들이 굉장히 창조적이에요. 뭘 다루는데 두려움이 없고 현실로 끌어들입니다. 이를테면 미술시간에서 그림만 그리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쓰는 책걸상에도 뭔가를 입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현실에서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신선했어요.
204×103.5㎝ 캔버스에 유화, 1989
-유학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동료학생들이 거침없이 자기세계를 표현하면서 작품으로 발전시켜가는 과정을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이를테면 자신의 콘셉트를 말하라고 하면 단지 선(線) 몇 개를 가지고 얘기해요. 처음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꼈거든요. 그런데 그게 학기말로 가면서 뭔가 하나의 자기세계를 만들어가요. 무척 경이로웠어요.
한국에서 서예, 사군자, 인물화, 산수화 등 동양화를 많이 하고 건너간 내가 테크닉은 뛰어났어요. 그러나 콘셉트가 구체적이고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그들의 힘이 놀라웠지요. 내가 유학 가서 배운 것은 동료학생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만남, 228×184㎝ 장지위에 혼합재료, 1998
-유학 중 하나님과 만나는 영적체험을 하게 됩니다. 작품제작에도 영향이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동양미술이론과 화풍 그리고 미국유학생활에서 받아들인 자유로운 색의 감각, 과감한 재료와 기법, 새로운 표현력은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였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동·서양 경험들은 작품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시선을 새로이 넘어서게 한 계기가 됐어요. 내면세계와 자아발견에 대한 관심을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고 화가 이정연 잠재의식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진원지가 되었지요.
▶[②:1993~2019년]로 계속
△글=권동철/데일리한국, 2019년 11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