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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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8. 5. 10. 02:36


Engram-sh1704, 100×185Archival pigment print, 2017



흐려지고 비워져가는 연륜의 겹

 

나는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면서, 이들 표현 전체가 시사하는 바 일종의 심리적 상태를 나 스스로 형용하려했다. 일상생활의 습관체계 밖으로 내던져 졌을 때, 나는 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내 감정생활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연 나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희생하며 또 무엇을 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걸까?”<양의 노래, 가토 슈이치(加藤周一)지음, 이목 옮김, 글항아리 >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보인다고 했던가. 빈 책장이나 책이 꽂혀 있는 그런가하면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을 따로 찍어 중첩시킨 화면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겹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줄이기도 더 키우기도 하고 선명하게 또는 흐리게 보이도록 의도성을 부여한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과 또 그 반대의 것들을 선별 할 수 없듯이 과정엔 무의식의 흔적들이 개입되기도 한다. 작가는 한 장면에 전체적인 책 내용이나 혹은 페이지의 주체인 사람의 철학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중첩된 이미지는 기억과 흔적의 메타포가 되어 심상(心像)으로 들어온다.

 


Engram-hw1803, 87.9×185, 2018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이라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의 뜻을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닌가. 그것을 한 장면에 담는다는 바람으로 일한다. 글씨, 그림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서로 다른 밝기로 중첩하다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짐과 의식하지 않는 것들의 남음이 자취의 형상으로 비친다. 매수(枚數)가 많을수록 비워져 가는 깊이감과 조우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사유적인 자국들을 녹여내게 되었을까. “2002년에 암이 발병했었는데 큰 병이 있으면 그것이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당시 취미가 책 읽는 것이었는데 인생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버렸었다. 그러다 운 좋게 회복되었다. 어느 날, 전쟁처럼 지나간 삶의 과정을 한 장면에 담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는데 그것이 책장시리즈였다.”



                                    박찬우(朴贊祐)작가



억겁시간의 숨 현대적 미감

사진가 박찬우는 서울예술대 사진과를 졸업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하여 2013년 다소 늦은 첫 개인전과 두 번째 연속으로 (Stone)’시리즈를 선보였다. 한국의 산하에 있는 돌을 채집하고 수조에 얹어 돌과 물의 공간감이 이뤄내는 미묘한 간극의 형상성을 렌즈에 포착해 냈다.

 

유구한 세월을 인류와 함께해 온 이라는 우주본원의 자연세계를 작품에 담아 낸 것이다. 이는 담박(淡泊)하면서도 억겁시간의 숨이 축적된 현대적인 미감으로 주목받으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라일락꽃향기를 바람결에 품은 봄 햇살이 화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수줍게 드리운 오후였다. 입구엔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각기 다른 텍스트의 제목만 있고 내용을 비워놓은 여러 권()으로 구성한 작가의 설치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모든 사람의 정의와 진리가 다르다라는 것을 말하려는 듯 한 느낌이었다. 이번 ‘Engram(기억흔적)’초대개인전은 작가와 줄곧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JJ중정갤러리에서 414일 오픈하여 512일까지 열리고 있다. 1~2층에 걸쳐 책과 책장, 돌을 비롯하여 그릇, 자개장롱 등으로 소재를 확장한 70여점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장시간 인터뷰 한 그에게 사진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물어 보았다. “병과 사투를 벌였던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많은 욕심이 없다. 작업시간만큼은 온전히 자기를 만난다고 믿는다. 그 순간이 재미있고 즐거워 빠져들게 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2018430일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