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lesh of passage, 315×700×1200㎝ 가변설치, 스텐리스 스틸·레진·실, 2017
검과 꽃 그 안에 응축된 욕망의 삶
“피부는 아주 매끄럽기는 해도 구릿빛에 가까웠다. 눈은 사팔뜨기이지만 찢어진 눈이 시원스러워보였다. 입술은 약간 두텁지만 모양이 단정하고, 껍질을 벗긴 편도(扁桃) 열매보다도 흰 잇마디를 이따금 언뜻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머리털은 약간 굵어 보이지만 칠흑같이 검고, 까마귀의 날개처럼 푸른색을 띄며 기다랗게 드리워져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눈은 정욕적이고 동시에 흉포한 표정을 띄고 있으며, 그 후 나는 인간의 눈에서 이러한 표정을 발견한 적이 없다.”<카르멘(Carmen), 메리메(Prosper Merimee)지음, 김진욱 옮김, 범우사 刊>
부와 절대 권력의 심벌이자 인류문명의 결정체 검(劍) 그리고 숨겨진 욕망의 대명사 꽃이다. 작품은 이들 검과 꽃이 조형적으로 결합하여 상통한다. 속 재료는 수지계통의 레진(Resin)인데 자연성의 우아한 양태의 컬러풀한 실로 표면을 감았다. 우주생성과 존재의 신비를 주술적 언어들로 숭배한 생명의 본질적 뉘앙스를 함의한 채 인과응보 그 한 생의 여정과 시간의 살을 품은 상징매개로 연결 짓는다.
그 연속성은 내용과 형식의 결합과 다름 아니다. 이와 함께 딱 한 번의 공격에 쓰러뜨리는 필살의 무기라는 검의 속성과 재료의 금속성이 갖는 보편성을 없애고 그 자리에 꽃술 같기도 한 굉장히 부드러운 실이라는 재료로 치환(置換)하였다. 그 상징성은 절묘하게 찰나의 감성을 드러낸다. 꽃잎이 처음 세상을 향해 열리는 은밀한 속살, 마침내 햇살과 만나는 꽃술 역시 완전함을 머금은 발아(發芽)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씨앗의 장엄한 몸짓이리라.
그렇다면 칼끝과 맨 하단 한 점이 수직으로 연결됨으로써 이 작은 점이 커다란 물체를 곧추세운 강렬하고도 눈부신 에너지는 과연 어디서 생성되는 것일까. “인공적이며 이성적인 검에 자연성의 실을 휘감음으로써 서로 반대되는 충돌 이른바 긴장과 이완이 결합되어 그 안에서 응축된 거대한 융합에너지의 결정체이다. 동시에 처음부터 마지막 마무리까지 모든 작업과정을 나의 손으로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접근방식 때문에 모든 작품엔 작가의 예술혼(魂)이 함께 흐른다!”
230×60㎝(전체)
◇자아의 길로 펼쳐지는 세계
작가는 1999년 서경갤러리에서 신화적 숭배와 꿈을 함의한 삼족기 도조작품을 선보이며 첫 개인전을 가졌다. 2008년부터 혼합재료를 활용하면서 조금씩 변화되는데 2009년 아트사이드갤러리 전시에서 도자와 설치조각요소가 혼합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후 소금과 실이라는 재료를 통해 독창적 작품세계에 몰입하며 8년 만에 갖는 이번 열한 번째 ‘The flesh of passage-시간의 살’초대전은 소금으로 작업한 17점을 포함하여 총33점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소재, 갤러리세줄 1~2층 전관에서 10월19일 오픈하여 11월18일까지 선보인다.
최정윤 작가
“형식적으로 볼 때 도자에서 설치조각으로 매체(媒體)가 전환된 첫 개인전”으로 의미부여한 최정윤 작가는 경주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도자전공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금산갤러리, 도쿄, 오사카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볼타쇼 바젤, 아트파리, 비엔나아트페어, 아트스테이지 싱가포르 등에서 미술비평가와 콜렉터들로부터 주목받았다.
전시장에서 인터뷰 한 그에게 작가의 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삶 그 자체다. 삶을 유지하는 것이자 동시에 저항일 수도 있겠다. 직업적으로는 지천명을 넘으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전에는 작업자체가 상대적으로 보였는데 이제는 그게 빠져나가고 지극히 나만의 세계로 펼쳐진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년 11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