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이 보이는 가회동, 41×65㎝, 숙선지에 선묘 담채, 2016
“북촌을 거닐다”
바야흐로 한류의 시대이다. 대중문화에서부터 그 유행을 주도해 오던 한류는 이제 한국의 문화와 전통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전통의 매체와 필법으로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나에게 한류는 또 다른 작업의 모티브로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의 초상화 ‘21세기 미인도’와 동자승을 비롯한 어린이 그림 등 내 작업은 “북촌을 거닐다”라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인물 표현과 함께 북촌이라는 장소성 까지 구현하게 되었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역사상 중요한 장소이다.
조선왕조 오백년을 이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수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은 현대화된 도시이기도 하지만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서울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북촌은 최근 몇 년간 많은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하며 서울의 전통가옥이 밀집 되어 있는 곳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지금의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계동 일대이다.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이 지역은 근래 들어 한류의 붐과 더불어 내외국인들의 주요 관광코스가 되었다.
북촌 마을 나들이, 91×117㎝ 비단에 채색&프린팅배접, 2015
나는 이곳을 십 수 년 전부터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가르침을 목적으로 다니게 된 이곳의 이전 모습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인적이 드물고 상가조차 희소하여 소란스럽지 않고 지루하기까지 한 곳이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지역 주민들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이곳은 예전의 모습과는 완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갤러리, 카페, 상가, 그리고 밀려드는 인파는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임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모습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이다. 정성을 다해 지은 단아한 복장은 아니지만 우리 한복의 고운 선을 살려 화사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디자인한 개량한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은 보기에 흐뭇하다. 과거 일본을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은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다니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기가 참 좋았다고들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부럽다고들 했었다. 그러한 모습이 지금 서울 사대문 한가운데 주택가에서 연출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서투르지만 서슴없이 한복을 빌려 입고 북촌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댄다. 이러한 모습이 현재 북촌의 풍속이다.
한복과 승복 등 한국적인 의상을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해왔던 나에게 이러한 모습은 관심을 가지게 하는 소재들이다. 그리고 십 수 년간 다니던 북촌이라는 거리 역시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옥’과 ‘한복’이라는 두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나의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한옥과 한복의 표현은 한국화를 전공하고 줄곧 한국적인 이미지만을 다뤄왔던 나의 작품과 자연스레 접목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북촌에서 봄을 마주하다, 32×42㎝, 숙선지에 선묘 담채, 2016
한 인물의 이미지를 통해 많은 의미부여를 해왔던 과거의 작품들과는 달리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충분히 의미전달이 가능한 이번 작업들은 현대 풍속화이다. 한번쯤을 지나봤을 법 한 익숙한 장소의 이미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풀었다. 회화의 죽음을 선고한 이래 그림이라는 영역이 위축 되면서 나는 사진과 그림이라는 질문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고 그림에 사진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사실적인 사진 배경은 익숙한 풍경을 더 친근하게 보여주고 미인도라는 전통적인 소재의 그림과 이질적이지만 조화를 이루며 현대 풍속화로서의 의미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이용한 배경 작업은 이질적이기도 하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 낸다. 이것은 어쩌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 세대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작품들은 너무나 한국적인 두 가지 컨텐츠인 한옥과 한복의 모티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것을 더욱 자랑스럽고 소중히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사진의 이미지가 난무한 이 시대에 전통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고민이다.
△글=2016년 10월 김정란<작가노트>
▶갤러리 FM=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57(안국역 사거리 우리은행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