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강의 푸른 바위-산하, 116.8×80.3cm 장지 위 혼합재료, 2016
심심산골 농부의 울퉁불퉁한 팔뚝힘줄처럼 암벽과 하나 되어 뿌리를 뻗은 소나무 가지를 박차고 두루미 한 쌍이 고고한 날개를 펄럭이며 저 아래 강줄기를 향한다. 고요함속에 한가로이 하늘거리는 삼라만상이어라. “저녁볕을 배불리 받고 거슬러 오는 작은 배는 온 강의 맑은 바람을 한 돛에 가득히 실었다. 구슬픈 노 젓는 소리는 봄 하늘에 사라지는데 강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을 한다.”<만해 한용운 평전, 강(江) 배, 김삼웅 지음, 시대의 창>
2월 아침의 봉의산 길, 193.9×97.0㎝
산수경석처럼 우리산하형상을 그대로 보존한 이끼를 껴안은 너럭바위에 홀로 앉아 강을 내려다보네. 별유선경이라 했던가. 강원도 횡성과 평창경계 태기산(泰岐山)서 발원한 섬강물줄기는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험준한 산세와 굽은 물길이 막막한 갸륵함으로 나그네 심중을 헤아리려하는구나. 굵은 뼈마디를 드러낸 듯 무덤덤한 맥과 길을 터주는 저 유현(幽玄)한 곰살궂은 심령. 어떤 꾸밈도 없는 그것이 그대마음의 빛깔이라면 지아비를 찾아가는 여인의 곱디고운 발뒤꿈치처럼 수줍은 듯 흘러가는 저 물결이 왜 노을빛에 반짝이는지 알 것만 같은데….
보름달이 구름 속을 지나며 협곡의 억겁시간을 건져 올린다. 나뭇잎을 지나 강바닥에 서로 부대끼는 이름 없는 잔돌의 포말에 이르기까지 달빛이 스며들었다. 꽃잎 하나 강물에 떠가다 멈칫 뒤돌아보는 그때 아릿하게 가슴으로 밀려드는 헤아릴 수 없는 공허감을 어떻게 쓰다듬을까.
이윽고 먼동이 밝아오고 있었다. 숲으로 거침없이 스며드는 아침햇살이 투영하는 긴 그림자. 강가여울목을 건넌다. 거북등짝처럼, 한 겨울 굳은 손바닥 살점처럼 쩍쩍 갈라진 기암절벽 바위 틈 가냘픈 물줄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극진한 이별의 노래를 씻고 ‘돌아오리다!’ 서러워 흐느끼는 한마디. 오오 생의 바랑을 풀어놓은 나의 산하(山河)여!
안보리의 향목, 193.9×97.0㎝
◇본연의 어진심성회복
제사에 향을 피우는 향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 ‘안보리의 향목’. 번뇌를 온 몸으로 받아낸 자국처럼 굴곡지어 뻗어나간 불그레한 가지사이 푸르스름한 기운은 차라리 처연하다. 이처럼 강원도의 미와 토속적 샤머니즘의 에너지에 근거한 조상과 자연신에 대한 기원과 염원이 작업을 이끌어가는 근간이다.
오방색 라인으로 형상의 경계를 나누어 하나하나 작은 힘의 집합체인 점묘(點描)로 의미를 구체화하여 집약된 미감을 선사하고 어두운 점부터 밝은 점을 반복하여 올림으로써 모습을 드러내는 노동을 동반한다. 작가는 “소재가 주변자연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가령 큰 바위, 부분적으로 썩었지만 꿋꿋하게 새로운 잎들을 키워내는 고목, 산중턱의 석굴, 한겨울이라도 따뜻한 기운이 도는 곳 등인데 감성메시지가 느껴지면 자주 찾아가고 그렇게 일체감을 느끼면 직접적인 시각 미와 비가시적인면을 조형화 한다”라고 말했다.
서양화가 김대영
한편 강과 산이 어우러진 강원도 춘천토박이인 김대영(Kim Dae Yeoung)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전공 및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이번 일곱 번째 ‘강원의 미-산하의 기원’개인전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백송화랑에서 20여점을 선보이며 8월24일부터 9월6일까지 열린다.
화백에게 화업에 대한 소회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 졸린 눈으로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고사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화가로서 산을 다니며 종종 데자뷔(deja vu)를 느끼곤 한다. 그런 연유 때문이지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경외감으로 보존되어야할 산하 속 인간본연의 어진심성회복에 더욱 힘쓰게 된다. 동시에 작가로서 점점 깊은 책임감이 커지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곤 한다. 내 작업의 소명의식과 관람자의 관점이 따뜻하게 소통되기를 기원하고 그러한 긍정의 시각으로 묵묵히 나아가려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주간한국 2016년 8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