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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OO SEOP〕서양화가 이두섭|수줍게 나풀거리네, 눈꽃송이여!(이두섭 작가, 화가 이두섭, 이두섭 화백,이두섭,고골리)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1. 3. 17:20

 

 

 

어떤 노래, 40×60Mixed Media, 2010

 

 

강변 모래밭에 동그라미를 그리다 손을 멈췄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얕은 강물엔 노랗고 빨간 구슬 같은 망울들이 눈부시게 어른거렸다. 일순 찰랑이는 물결 위, 보였다 사라지며 수놓인 운율은 소년을 매료시켰다. 얕은 구릉엔 오후의 겨울햇살이 아늑하게 스며들고 강변 양지바른 곳엔 키 작은 들꽃들이 수줍게 피어있었다.

 

강물과 하늘과 낮은 동산이 포근하게 감싸듯 평온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새록새록 잠이 들었던 것이다. “해가 타오른다. 3/풀잎 꿈 속에 꼬부려 누워 소년은 잠이 들고 이글이글이글 풀잎 꿈 속에서 소년의 꿈 속으로 불덩이가 넘어간다.”<신대철 , ‘自然중에서>

 

 

 

 

 

 

 

중첩된 화면 자연의 경외감

 

화면은 생명의 찬가를 피워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의 번민들을 닦아내던 마음의 겹겹들이 목가적 정경으로 우러나온다.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아크릴 레이어(layer)를 얹으면서 자연의 메타포를 펼쳐나가는데 작가의 조형적 탐구근원엔 우리산하 야생화가 자리한다.

 

비와 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피워 낸 강인한 생명력의 꽃들에게선 맑고 깨끗하며 저마다 진한 향기가 배어나온다.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을 받으면서 살짝 굴절되어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나 꽃들이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생동감을 전해준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풍경들이 쌓이면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중첩된 레이어의 여백과 쌓여진 이미지들이 전하는 투명한 미학은 순수한 자연의 감동을 전파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무한한 사유의 지평을 확장시키는데 영향을 준다.

 

작가는 거주하고 있는 남한산성 아래 산동네의 산책길에서 오랜 세월 보고 만나며 얻은 영감을 드넓은 상상의 나래로 그려나간다. 야생화를 비롯한 산과 들과 나무와 언덕들은 오랜 시간의 자정(自淨)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지금 현실에서 뻗어 나아가 성장하려는 기운찬 에너지를 전한다. 이와 함께 작품메시지 의미망 중 하나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영상세계가 주는 리듬성이다.

 

 

 

   

 

 

시각이주는 맑은 상()에 자칫 놓치기 쉬운 이 운율은 작품의 명상적 흐름을 이어주고 연결해 주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다감하게 나직이 이야기하듯 화폭에 담는 이 율동감은 충만한 영혼이 선사하는 서정의 자유로운 노래이기도 하다.

 

그는 들길을 걷다가 또는 산길을 오르다가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과 풀과 눈()과 비와 바람. 종종 자연에게 화업의 자취를 물어보곤 한다. 그러면 자신의 빛깔을 표현해 내는 분별과 일깨움을 얻곤 한다. 그것이 화가가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참 자유라는 것을 알기에라고 메모했다.

 

 

 

   

 

 

 

수줍게 나풀거리네, 눈꽃송이여!

 

추수 끝난 후 긴 그림자처럼 적막이 드리워진 들녘. 한 무리 새때가 무엇이 그렇게 신명나는 일인지 지상에 닿을 듯 내려왔다 수직으로 솟구쳤다. 날은 저무는데 겨울안개가 웅혼한 기상이 담긴 오랜 비화(祕話)를 두 팔 위에 올린 채 천천히 번져오는 듯 했다.

 

장엄한 그때였다. 가녀린 낙엽 한 장이 부르는 덧없음의 노래가 허공에 여운처럼 번졌다. ‘마지막까지 홀로라도 나풀거릴 수 있어서 삶은 존엄한 것이네라는 가사에 응원하듯 저 먼 산 해거름은 서둘러 느릿느릿 산등성이를 배회했다. 어느새 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얀 눈송이가 나풀거리며 나뭇잎에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권동철, 월간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5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