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JEONG HYEON SOOK〕화가 정현숙 | 원과 나비 그 영원성의 꿈(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정현숙 작가, 정현숙 교수,정현숙)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1. 3. 17:11

 

Before and After, 110×40Acrylic, crystal and Mother of Pearl on Canvas, 2014

 

 

 

커다란 통유리 창밖엔 나지막한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진눈개비가 이별의 고통을 토하는 첼로 선율처럼 허공에 스러져갔다. 바람은 나목(裸木)의 가지를 부딪치며 윙윙 거친 소리로 허공을 갈랐다. 눈발들이 가뭇없이 흩어져 사라질 때 거뭇거뭇한 어둠이 얕은 구릉을 내려오고 있었다. 겨울비는 추적추적 소리를 내며 밤을 이끌었다.

 

 

 

   

 

 

 

딸각! 그때였다. 은은한 핑크 조명 몇이 빠른 템포의 리듬처럼 순식간에 켜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열렬한 사랑의 스파크(spark)처럼 영롱한 빛줄기가 창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자개며 크리스털(crystal)이 발산하는 컬러풀한 발광 사이, 고아한 자태의 백자가 부산한 창밖을 자애의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옵티컬(optical)한 빛깔이 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진홍(眞紅)의 용암처럼 격정적으로 전해질 때 몸을 숨기지 못한 빗줄기는 그대로 알몸을 드러내며 우왕좌왕 흩뿌려지고 있었다.

 

 

 

 

 

 

 

달 항아리와 자개장롱의 모정

 

어릴 적 자개장롱은 신비한 마법의 상자였다. 동백기름을 발라 윤기 자르르한 검은 머릿결을 한 어머니가 바로 그곳에서 하얀 버선을 경건한 표정으로 천천히 꺼내는 모습을 곁에서 보았던 것이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장롱 위 아침 햇살을 받은 하얀 달 항아리의 유연한 곡선과 흰 버선과 어머니의 단아한 자태가 어우러진 그 고격의 풍경이 가끔 떠올려지곤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정(母情)에게서 풍겨 나오는 형언할 수 없는 굳건한 믿음과 늘 동행하고 있는 유년의 아름다운 동반자이기도 하다.

 

빛의 신성함을 껴안은 항아리의 둥그스름한 단순미의 원()은 마음을 편안하게 인도하고 염원을 담은 심상세계의 발원지였던 것이다.

 

 

 

 

 

 

 

원과 나비 그 영원성의 꿈

 

눈부신 빛깔사이 흐릿하게 어떤 움직임이 드러나다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비무리였다. 신사임당 초충도병(申師任堂 草蟲圖屛)‘수박과 여치처럼 생생하게 어디선가 날아 든 나비들이 백자며 불상을 빙빙 돌았다.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는 듯 보드라운 날개 짓으로 속삭일 때마다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하여 짠 비단처럼 찬란했던 기록들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정다운 사람의 볼을 쓰다듬듯 반듯하게 써 내려간 우리나라 글자가 한반도의 미학임을 반증하고 있었다. 달빛 그 애무의 마음빛깔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로 연결된 둥근 원의 선상에 퍼져가는 눈부신 광채.

 

그래서 일여(一如)라 했을까. 언젠가 여명의 시간 가슴 뭉클한 그대와의 재회를 꿈꾸는 날의, 저 찬란한 빛!

 

 

 

 

=권동철, 출처=경제매거진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5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