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홍지동 그의 집은 북한산과 인왕산자락에 포근히 안겨있다. 마당으로 가는 돌 틈사이 풀들이 제멋대로 솟아 있었다. 주인의 배려덕분이다. 파이프를 주워 모양을 내 솟대를 세웠다.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노래할 것이다. 문득 그가 썼던 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스쳐 지나는 역. 내리고 떠나며 어떤 이는 머물고…. 우리는 또 하나의 잎사귀.”그 잎들이 희끄무레한 암석에 그늘을 만드는 한여름 오후였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이미화기자]
장사익은 몸살 앓는 몸처럼 뜨거움으로 가득 찬 노래를 온몸으로 부르는 사람이다. 가없는 편린들이 그가 토해내는 소리 안에서 비망록처럼 원형(原形)으로 빛나고 마음을 뒤흔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멜로디를 따라가면 ‘내’삶과 함께 변주되는 노래를 만난다.
밖이 훤히 보이는 거실의 널찍한 창. 장사익(63)선생은 달짝지근하며 향이 그윽한 작설차(雀舌茶)를 권하며 “따뜻할 때 마시면 속이 시원해 질 것”이라 거푸 몇 잔을 쭉 들이키라 했다. 햇빛, 바람, 안개가 스스로 들어와 노닐다 심심하면 온다간다는 말없이 나갈 공간에 고담(枯淡)한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복사본이 키 낮은 병풍에 깔끔하게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집 한 채와 고목(古木) 몇 그루 그리고 여백…. 그는 적적하기 그지없는 고요한 겨울풍경을 바라보며 농축된 먹빛 속에서 홀로이 소리의 군더더기를 비우는 시간을 어루만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여수 엑스포 공연 후 음악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합니다. 잠자고 노는 것이 일인데 이런 더위엔 자연도 사람도 좀 쉬어야 하지요”라며 “노래는 본질적으로 기꺼이 내놓는 것입니다. 사랑을 교감하고 슬픔을 나누고 신뢰를 깊게 하는 것은 노래의 힘”이라고 말했다.
오래간만에 7집 ‘역(驛)'을 발표했다.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보면 덩달아 뿌리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중략) 세상은 다시 역일 뿐이다’라는 김승기 시에 선율을 얹어 표제로 삼았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이 고향입니다.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흥도 있으셨던 분이셨지요. 제가 장성(長成)을 해서도 집으로 갈 때면 늘 기차역에서 저를 기다리셨죠. 참 애틋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지난 어느 날 고향에 기차를 타고 갔더니, 바람만이 와락 가슴으로 밀려왔지요.”라고 회상했다.
노래의 큰 울림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관객은 하나를 전하면 하나를, 일백이면 일백으로 듣습니다. 가령 3000명 관객이 하나 되지 않으면 그 수(數)만큼 부서집니다. 그러나 저는 엄마가 치성(致誠)을 다해 기원하듯 죽을 힘 다해 정성스럽게 부릅니다. 제 마음과 똑같이, 이심전심이 통할 때 관객은 하나로 호응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래인생 18년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중년의 삶에서 노래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희망은 현실적으로 가느다란 끈을 잡는 것에 불과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 꽃이 쫙 피듯 노래의 세계가 열렸다라고 말합니다. 봄엔 남들 다 꽃필 때 겨우 싹만 나오고, 폭염과 장마와 태풍을 온 몸으로 감당하며 혹독한 시간을 거친 후 만추(晩秋)의 끝에 피어나는 한 송이 국화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 인생은 처음부터 음악이라는 탯줄을 잡고 살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년 8월16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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