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2㎝(each), 2013
궁극의 비움 그 융합의 서법미학
“수행자의 관심은 영적성장과 영혼의 자유에 있다. 굳이 궁극을 묻는다면 자유의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는 것은 없다. 진리의 흐름에 때로 맡기고 때로는 힘을 쓰고 때로는 노닐며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비움으로 진리와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이다.”<무시선(無時禪), 김도훈 著, 씨아이알>
꽃은 떨어져도 향기는 남는다는, 화락향유(花落香留)다. 꽃의 기억을 간직한 향기는 그러므로 본질이다. 화면은 서예라는 전통적 인소를 근본으로 한 서체추상작품이다. 읽을 수 없지만 필흔(筆痕)은 단 한 번 붓놀림의 호방한 일필휘지의 박력으로 거침이 없다. 그 긴박감 속에 상쾌하고 유려한 필선이 한국성의 시적정취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화선지 대신 캔버스다. 그리고 마음이 가는대로 써내려간다. 좋았던 일, 미안하거나 후회되는 일들을 새김질하고 그러한 반복에서 마침내 무의식과 해후한다.
작가는 “비워져 있는 그대로 보아야 보인다. 너무 채우려하면 화려하거나 가식적으로 드러내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단순히 써내려가는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찌꺼기를 덜어내는 심층적 발현의 반복적 수행산물이다. 스스로 한계점을 맡겨두고 완벽할 수 없지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작품에 늘 고심한다. 결국은 나도 내 작품을 보게 되는데 심상의 수양이 실상은 더 고행을 요구한다. 그 가장자리에 겸손이 있고 바로 그것이 작품에 대한 흡인력을 갖게 하는 힘”이라고 토로했다.
화락향유(花落香留), 110×300㎝ Acrylic on Canvas, 2015
◇나의 작품을 할 뿐이다
작가는 다섯 살 때 붓을 잡았고 중학생 때 정식으로 서예공부를 시작했다. 도연명의 시문 귀거래사, 서예가 안진경의 해서(楷書) 글씨체 법첩 등을 많이 쓰다 보니 어느 책 어디에 그 글자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스승이 절에 들어가 동양에서 제일 좋은 종이로 자주 글을 썼는데 남은 종이로 익힌 것이 재료를 빨리 터득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2년 항저우에 서예공부를 하러 갔다가 전각명소답게 많은 전각가들을 만나고 또 재료를 구입해 두었던 인재(印材)로 2006년 인사동 우림화랑에서 ‘돌 틈에 부는 바람’ 유인(遊印)전시를 열어 ‘서예표현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현재 중국 랴오닝 성 판진시에 위치한 예술촌에서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는 그가 최근 서울에 잠시 왔다. 조계사 인근 조용한 찻집에서 만나 서체추상작업 배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서예적 장법(章法)에서 자유로워지면 서예도 컨템퍼러리가 되고 추상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마침 2005년도 중국 중앙미술학원 출신으로 국전에서 수상한 서법가의 장대한 스케일과 일본 서도가들과 교류하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손동준 작가
손동준 작가는 원광대학교 서예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유교경전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중국으로 홀연 떠나 2010~2014년까지 북경 수도사범대학 서법문화연구원에서 중국서예최고봉인 구양중석(欧陽中石)서예가에게 사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가진 열한 번째 개인전에서 입체적 필선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2016년 ‘일중서예(一中書藝)우수작가상’을 수상했다. 한편 지난해 12월16일 오픈하여 1월24일까지 서울시 종로1번지 교보문고 내,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미술8인의 단색조회화’라는 부제가 붙은 ‘채움’기획초대전에 출품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관을 이렇게 피력했다. “나의 작업을 위해서 서예를 떠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모두 접목하거나 흡수하고 싶다. 굳이 남들 평에 의해서 서예가나 화가로 불리는 그런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나는 나의 작품을 할 뿐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년 1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