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heterotopia〕무엇을 그릴 것인가(마네,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콰트로센토,quattrocento,화가 이광수,이광수 교수,이광수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2. 15. 17:54


화가 이광수




의무와 억압, 경쟁과 반복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과 다른 공간, 위안을 받는 이질적 공간을 헤테로토피아 (heterotopia)’라고 칭한 바 있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를 빼놓고는, 20세기 후반 미술의 패러다임에 관한 다양한 영감과 방법론을 제공한 사람을 논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비평가들이 그의 작업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기도 하는 미셸 푸코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인문,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출판되지 않았지만, 그가 강의 중 미술사를 많이 다룬 것은 마네에 관한 책의 초고를 위해서였다는 것으로 푸코는 몇 강연에서 왜 마네의 그림이 자신의 관심을 끌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푸코는 마네가 인상파를 실현시킨 화가 여서가 아니라 인상파를 넘어서서 모든 근대 회화를 가능케 한 화가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네의 그 가능케 한 배경 핵심은 곧 규칙을 깨트린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콰트로센토(quattrocento, 이탈리아 문예 부흥의 초기인 15세기의 예술운동)이래, 화가에게 그림이나 화폭 등 어느 특정의 공간 속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며 그 사실을 애써 감추거나 피하게 만드는 규칙을.

 

마네는 오브제로서의 화폭,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물질성을 표본적인 물질성의 요소들이 살아 움직이도록 했으며, 재현된 장면 안에서 회화적 물질성을 통합시켰다. 예를 들면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라든가 캔버스의 질감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는 그림의 깊이를 없애 버렸다. 결국 푸코는 마네 그림이 재현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던 것이다.

 

푸코가 집필과 강의 활동을 하던 20세기 후반은 예술 사회적 기반이 그 사회의 지배계급에 속한 엘리트에 의해서 제공되었다. 이 엘리트주의는 푸코가 주장한 문화폭력이 되어버린다. 이른바 엘리트주의’ ‘회화 없는 회화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밀레니엄 시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혁명시대의 예술가들에게는 20세기 후반 푸코의 미학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미술에 있어서 논할 수 있는 테제들은 다양하고 그것들이 발생되는 데는 중요한 원인과 이유가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제시되어지는 새로운 테제들은 예술가들에게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해답이 되어 주었다

 

물론 시대나 상황에 따라 불필요해지거나 의미를 상실하는 테제들도 있으나 미술에 있어서 재현과 표현방법에 대한 문제는 영원한 테제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푸코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패러다임에서 21세기의 오늘 미적담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우리는 직면해 있음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이다.

 

이광수/백석예술대 교수




2008730일 스포츠월드 SW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