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엔 추수 끝난 들녘에 피어오르는 연기 또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온통 작가가 유화 칼끝으로 그려낸 잔잔한 곡선들로 가득하다. 때론 너와 나의 고향 같은 동심원(同心圓)과 바람이 머물고 낙엽이 구르는 어느 계곡이 속 깊은 이야기를 품은 채 은은히 다가오기도 한다.
장에 갔다 돌아 올 어머니를 기다리는 구불구불한 흙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남매의 모습 뒤로 노을은 강과 산언덕을 비춘다. 그 정경이 너무나 정겨워 볼을 타고 내리는 굵은 눈물방울을 훌쩍훌쩍 훔치게 만든다.
그것은 쑥스러움이 아니라 자아의 모습이다. 비로써 내 안의 나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강인주 화백 회화의 힘인데 작가는 그렇게 간결한 이미지만으로 가슴속 깊숙이 자리한 이야기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놓아 기억 속 아련한 오솔길로 인도한다.
화면엔 관람시선을 놀라게 하거나 자극할 만한 강렬한 그 무엇도 없다. 그저 나지막한 산, 들, 강과 아이들과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맨 어머니의 모습 등이 등장한다. 그곳에 화백의 연작 ‘The Sounds’가 존재한다. 중견화가의 웅숭깊은 붓질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한국적인 정경과 자연이 빚어내는 마음을 울리는 소리(The Sounds)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강변 억새 숲 자그마한 웅덩이와 고목에 둥지 튼 텃새의 생명들이 먹이를 물고 날아드는 어미를 감지한 듯 고개를 내미는 풍경 속에서 ‘나’를 발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강인주(姜寅周, KANG IN JOO) 화백의 스물여섯 번째 개인전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1길 소재, 아리수 갤러리(arisoo gallery)에서 9월30일부터 10월6일까지 열린다. (02)723-1661
△글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5년 9월2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