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 실경산수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주문·감상·수장된 것은 이것이 유학적인 사상과 문화, 가치를 담아낸 그림이기 때문이다.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추구한 사상이자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든 문화로서의 유학(儒學)은 궁중과 지식인 선비계층이 선호한 실경산수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 가야산이 품은 해인사(海印寺)가는 길목 구정리. 웅장한 오케스트라연주처럼 오색단풍으로 물들어가는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서 생의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이야기를 건넨다. 밑에서 부터 점점 물들어가는 11월 오후 짙어가는 활엽이, 아득하기만 하여 덧없이 흘러가는 거라고…. 물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강물에 세속의 업(業)을 씻어 흘려보낸다. 물길을 건너 정토(淨土)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장엄의 암벽과 마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