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그 당시 기사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동아일보 기사를 알게 되었다. 그 기사가 오광수 선생의 평인데, 그 내용 보다도 당시 메이저 신문에서 학생들의 작품에 대한 개별평가를 보도해 주었다는 것에 그 감명과 책임감을 느꼈다. 또한 당시 전시장이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립중앙공보관 지하1층~지상2층까지 전관을 ‘오리진’창립전을 가졌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규모면에서 주목받을 만했다. 나의 작품은 1층 전시장 입구 첫 번째에 걸었는데 모두 150호 크기의 세 점이었다. 1)” 뒤범벅의 可能性-‘오리진’創立展 △글=오광수(吳光洙) “유전자의 순수성과 삶의 소지에서 심화된 평범을 마련한다는 이념을 내걸고 출발한 ‘오리진’창립전은 추상회화가 당면한 질적 비약을 인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