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Lines)을 따라 나아간다.1)”
화면은 멀리서 보면 단색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점점 다가가면 평면에서 수직선이 드러나고 더 가까이서면 선(線)과 그 사이의 깊이로 빠져드는 매혹의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은 레진(Resin)을 여러 층(layer)으로 쌓아올려 구성된다.
이 입체공간은 투명함의 수용성이 강한 특징을 갖는데 작가는 수많은 수직선(線)을 새기고 그 자국에 한 가지 컬러만 넣는 방법론을 반복하여 전체를 변주해 낸다. 그리하여 궁극의 심도(深度)로 내려가는 기하학구조는 밝고 환하며 상쾌하고 명징한 고요의 기운으로 표출되고 있다.
“중국원대 화가 예찬(倪瓚)의 그림을 보면 앞에 나무가 있고 가운데 비어있는 여백 그리고 저 끝자락 먼 산이 있다. 고아한 운치를 갈망하는 그 허허(虛虛)로이 고즈넉한 사의(寫意)의 품격에서 영감을 얻는다.2)”

◇동일성과 내재율 융합코드의 시각문화
화면의 수많은 선들은 겹치거나 섞여있지 않다. 저마다 독립적 개체성을 드러내는 동일성(identity)의 체계는 지속과 확장의 경로로써 상호관계성을 보여준다.
부연하면, 각각의 선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코드의 속성을 지닌 ‘다름’이며 동시에 융합적인 내재율을 발현하는 질서의 개체(individual)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선은 다른 선에게 감각적 공간을 열어주어 유기적으로 전환되는 형식임을 증명하고, 아울러 레진레이어가 품은 내재성(Immanence)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낸다.
이러한 고유성은 홍매화가지가 햇살아래 자신의 선(線) 그림자를 대지에 새기는 패턴처럼 화면의 무수한 선·공간은 참신한 생성에너지의 호흡으로 운동성(motility)과 깊게 연동된다. 그럼으로써 평면 안 공간은 광대한 우주를 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몸짓이 쓰기나 그리기 외에 자취를 남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 한 사람이 세상사이로 움직일 때 밖으로 가리키거나 이루어내는 바로 그 인생길을 손 안쪽으로 감싼다.3)”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화면은 모호하고 차가우며 따뜻한 침묵이 공존하는 에스테틱(aesthetic)한 독자적 시각문화의 현대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명제 ‘Beyond The Color’연작 “실체 그 자체는 하나의 유이다. 그 아래에는 신체가 있고, 신체의 아래에는 활력 있는 신체가, 또 그 아래에는 동물이 있다; 동물 아래에는 이성적인 동물이, 그 아래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의 아래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개별적 인간들이 있다.4)”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3월2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3월호]
[참고문헌]
1),3)=라인스-선의 인류학(Lines: A Brief History), 팀 잉골드(Tim Ingold) 지음, 김지혜 옮김, 포도밭출판사.
2)김현식 작가, 레진(Resin)작업의 사의성(寫意性), 2026.
4)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입문(Continuum Reader’s Guides Dreleuze’s Difference and Repetition), 조 휴즈(Joe Hughes)지음, 황혜령 옮김, 서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