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식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②]雅(아)‥추사 김정희,불이선란도,근원 김용준,화가 김환기,화가 도상봉,백자대호,달항아리,겸재 정선,화가 황인기,화가 박대성,화가 고영훈,화가 임송희,화가 윤..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1. 10. 1. 16:41

(정면 좌우)고영훈-패랭이꽃, 2012-13, 캔버스에 석고, 아크릴릭, 160×126㎝(each),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권동철  

 

한국의 졸박미 정체성 찾기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시, 78~101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

 

 

전시구성 ‘Ⅱ-雅(아)’에서는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서 해방 이후 화가들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추구와 국제 미술계 진출을 통한 한국 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고군분투하였다. 비정형의 미감을 통해 추구되었던 한국의 졸박미(拙朴美)와 한국적 표현주의를 살펴본다. 아래 글은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도록(국립현대미술관, 2021)에 수록된 △<달항아리에 담긴 ‘전통’과 ‘해석’의 미학,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동시대 겸재, 진경산수, 그리고 금강산, 송희경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초빙교수> △<조선후기 문인화와 김정희의 시선, 김현권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전위미술론을 대표하는 ‘문장’ 문인들의 전통관, 박계리 국립통일교육원 교수>을 요약 발췌했다.

 

 

백자시각미감과 역사성에 주목

항아리 그림에 담긴 서정적이고 시적인 정서는 해방 이후 김환기(金煥基, 1913~1974)의 백자 그림과도 연결된다. 김환기의 백자 사랑은 대단해서 둥글고 큰 백자 항아리에 달의 이미지를 더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었다.

 

미술학자 최순우는 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조백자항아리전시를 기획했는데, 특기할 만한 사실은 2부에서 달항아리에 꽃을 꽂아 완상용으로서의 백자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이다. 1970년 신세계에서 열린 이조백자항아리전시도 주목할 만하다. 순백자 70여 점이 전시된 이 전시에 권옥연, 김기창, 김수근, 김환기, 도상봉, 변종하, 이경성, 최순우 등 내로라하는 미술계인사들이 총출동되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1970년 작 장우성의 달항아리에 매화나무 가지를 꽂아 놓은 것 역시 신문인화를 추구했던 그에게 달항아리가 선비 문화로 비쳤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도상봉은 본인의 호를 도자기의 샘(陶泉)’이라 지을 만큼 도자기에 대한 애호와 이해가 깊었던 화가다.

 

한편 달항아리는 백자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이며, ‘무문(無紋)자기가 달항아리로서 전위적·문인화론과 결부된 또 다른 도자론을 발전시켰다. 둥근 호가 모던하다는 인식이 존재했으며, 현대 달항아리의 전개 방향이 지나치게 미학적으로만 치중되어 있다는 우려도 짙다.

 

백자대호라는 본래 이름에 집중해 역사적 맥락에서 달항아리에 대한 또 다른 면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백자 특유의 시각적 미감과 함께 본래의 기능과 성격, 그리고 역사성 또한 파악해야 온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항아리에 담긴 전통해석의 미학,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겸재 정선-금강전도, 1734, 비단에 수묵담채, 130.8×94.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금강산 그림새로운 모색과 확장

진경산수는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금강산 그림을 포함한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의 대명사로 고착되었으며, 지금까지 한국의 산천을 실감 나게 그린 수묵화의 한 장르로 호명되고 있다. 진경의 재평가와 진경산수화의 급부상은 1960년대 민족의식의 고양과 식민주의 사관의 극복을 중요시하는 연구 경향과 연관성이 있다.

 

민족 단합과 국가 건설이 중요한 사회 이슈로 부각되던 시기에 민족중흥이 문화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고, 미술계도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민족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민족주의 감성이 가장 잘 반영된 화목으로 산수화와 풍속화가 지목되었다. 특히 1960~1970년대 동양화단에서는 한국의 실경을 채색이 아닌 수묵으로 재현한 산수화가 유행했다.

 

 

황인기-방금강전도, 2017, 합판에 레고블럭, 288×207.7㎝, 개인소장. 사진=권동철

 

오늘날 금강산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가들이 채택한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예컨대 정선과 진경의 수용에서 출발했지만 독특한 화법의 사생화를 개발하거나, 정선화를 차용하여 지필묵 이외의 물성으로 또 다른 방작(倣作)을 창안했다.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황인기(1951-)이다. 황인기는 전통 산수화의 원본 사진 필름을 컴퓨터 픽셀로 전환한 바탕에, 픽셀의 점마다 리벳, 거울 조각, 크리스탈, 레고 블록을 붙이거나 실리콘을 쏘아 입체감을 살리는, 이른바 디지털 산수화를 고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창작 방식으로 방금강전도를 완성하며 동양회화의 방고(倣古)’를 실천했다.

 

 

(왼쪽)박대성-금강전도1, 2000, 종이에 수묵담채, 134×16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중앙)임송희-외금강 비룡폭포, 2002, 종이에 수묵채색, 210×149㎝, 국립현대미술관소장. △(오른쪽 정면) 윤명로-겸재예찬 M.310, 2000,캔버스에 유채, 227×187×(2)㎝,국립현대미술관소장. 사진=권동철

 

박대성(1945-)금강전도에서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를 부채꼴 모양으로 형상화한 다음, 그 가운데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배치하였다. 냇물 가운데 군데군데 표시된 담청색의 동그라미는 흐르는 물가에 놓인 디딤돌이거나 물결의 또 다른 표현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거대한 화면을 선택한 작가들은 금강의 암석을 횡으로 나열하여 압도적인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이렇듯 풍부한 조형 언어로 창조된 동시대의 금강산 그림에서 지금의 한국미술계가 과거를 수용하고 이를 새롭게 모색하려는 확장된 창작 방법이 확인된다.”<동시대 겸재, 진경산수, 그리고 금강산, 송희경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초빙교수>

 

 

(왼쪽)전형필-방고사소요도(倣高士逍遙圖), 1956, 종이에 수묵, 31.8×50.7㎝,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오른쪽)손재형-승설암도(勝雪盦圖), 1945, 종이에 수묵, 23×35㎝, 개인소장. 사진=권동철

 

조선의 문인화소슬한 경지 순연한 운치

조선의 19세기 중반까지 문인화에 성리학을 투영시킨 예술론이 대종을 이루었고 정론으로 인정받았다. 조선에서는 성리학이 국가통치이념을 비롯하여 개인의 삶과 사고를 좌우했으니 예술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불이선란도, 19세기 중반, 종이에 먹, 54.9×30.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문인화 학습의 구체적인 경로(門徑論)를 제시했다. 그는 산수화에서 이인상을 경로의 시작에 해당하는 화가로 놓았고, 궁극적으로는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을 문인화의 원 자취가 있는 화가로 보았으며, 예찬의 소슬한 경지와 신묘하면서도 순연한 운치(神韻)를 참작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기법상으로는 마른 필(枯筆)을 사용해야 하며, 먹을 여러 번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세한도(歲寒圖)’가 탄생했으며, 생애 말년에는 서예 운필법을 사용한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을 남겼다. 이 난은 세상 속의 난이 아니라 글씨 속의 획이며, 이인상이 전서로 측백나무를 대신한다는 서화동원의 조형적 선언을 넘어서는 조형적 실천이었다.<조선후기 문인화와 김정희의 시선, 김현권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김용준-매화, 1948, 종이에 수묵, 26.5×18㎝, 개인소장. 사진=권동철

 

사회 전반에 걸쳐 전면적인 서구화가 진행된 20세기 후반, 문인화라는 지극히 복고적인 회화가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의 역할이 컸다. 그는 본래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수묵채색화로 전향하고 1930년대부터 문인화의 가치를 역설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여 회화의 최고 정신을 담은 것이 남화(南畵)라거나, 동도서말(東塗西抹)하여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흉중에 문자의 향과 서권의 기가 가득히 차고서야 그림이 나온다.동문민(董文閔=董其昌)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에서 말한 바 독만권서(讀萬卷書)하고 행만리로(行萬里路)해서 흉중의 진탁을 씻어 버리면야 물론 좋다.”라는 언급은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전위미술론을 대표하는 문장문인들의 전통관, 박계리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권동철, 9282021,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