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Clay mate’토우의 환생-1대(代):8남매 늘어진 젖가슴 76살 신영분 외할머니, 100×200㎝ 한지위에 프린트, 2010 △2대:큰 손 가슴 털 표준 남성 50살 김흥기 아버지 △3대:한손가리고 아빠바라기 20살 김경원 나 △4대:강물 담은 항아리 귀부인 16살 배윤조 내 딸
“삶을 살아가는 데 이러한 자연을 닮은 흙 사람들과의 만남은 한 줄기 시원한 바람, 이름을 묻지 않아도 되는 풀꽃들”이라 작가는 메모했다. 우리 산하의 흙냄새 물씬 나는 토우(土偶) 그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밤색 조선 한복이란 얼마나 헐겁길래 커다란 항아릴 감싸안은 듯한 아름 웅웅거린 평생으로 아직도 펄럭거린다/모든 시간의 끝까지 흘러가본 유행이란 없는 법이란다/그 뒤켠으로도 잔잔한 풍파 이어져 있어서 네가, 성장하고 나선 이 봄 나들이로 건너오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억새들이 허리꺾고 바람결에 소리쳤겠느냐”<김명인 시, 가족소풍, 문학과 지성사>
화면의 작품은 외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나의 딸까지의 소소한 그러나 진솔하여 차라리 장대한 삶의 스토리다. 외할머니는 충남광천의 대갓집 둘째 딸로 태어나 머슴들과 오빠들 사이에서 쌀가마니를 옮길 정도로 힘자랑하면서 자랐다. 태어난 날과 시가 워낙에 좋아 필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확신해 아들이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딸이어서 친정아버지가 한 달여를 안쳐다보았다는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 공부를 가르치지 않았으나 독선생을 두고 공부하는 오빠 옆에서 마당을 쓸다가 천자문을 독파하신 영특한 분이시다. 그 후 시집가서 맨 손으로 행상하시면서 8남매를 대학공부까지 모두 시키신 훌륭한 할머니가 되셨고 손주들을 무려 50명을 거느리셨다.
아버지는 두툼하고 까만 커다란 손을 가진 가슴에 털이 난 표준 남성이시다. 집안에서 사각팬티만 달랑 입고 오통통한 배를 내밀고 왔다갔다 돌아다니신다. 아침이면 수세미처럼 까칠하게 가득 돋아난 수염얼굴로 나를 깨우려 비빌 때는 따가워서 일어나 도망을 가곤 했다. 부엌에서 엄마를 도우며 그릇을 닦을 때 아빠얼굴에 그릇을 비벼서 설거지를 하면 잘 닦일 것이라 여러 번 생각했다. 그 시절, 세상 모든 남자들이 가슴에 털이 난 줄 알았다.
아빠는 딸 바보였고 나는 언제나 아빠 말이면 모두 다 진실인줄 안 아빠바라기였다. 그래서 첫 생리를 했을 때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아빠에게 심각하게 ’아프지는 않지만 제 몸에서 계속 피가 흐른다’라고 진지하게 상담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나이 일곱 살에 할아버지를 여의셨기 때문인지 항상 나를 목마 태워주시거나 안고 다니셨다. 나는 자다가 가위에 눌릴 때 간신히 아빠를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팔베개를 해 재워주셨다.
나의 딸은 천사의 미소를 닮고 태어났는데 한쪽 눈을 감고 윙크를 하면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항상 잘 웃고 징징거리는 것이 없었다. 이미 다섯 살 때부터 꿈이 현모양처였던 이 아이는 훗날 귀부인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키웠다. 지금은 길양이를 집에 데리고 와 불쌍하다며 밥을 주고 자기 몸만 한 차우차우진도 혼혈 개를 데리고 산책하며 이웃집 순수혈통 개 주인아저씨와 후세를 위한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바람과 시간, 그을음
작품엔 아르카익(archaic) 양식처럼 소박하고 생동하는 생명에너지가 흐른다. 작가의 토우에선 무수한 세월을 살아낸 질료가 주는 존재감의 느낌이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손으로 빚어 만든 토우를 초벌구이 한 다음 옹기가마 한 귀퉁이를 빌려 지푸라기와 볍씨를 채워 24시간이상 불을 땐다.
라꾸소성-유약이 아닌 바람과 시간 그리고 불을 통해 새겨진 연(煙), 그을음은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색과 시간을 올린다. 작가는 “어눌함과 설익음을 표현하려는 질료로 흙은 안성맞춤이었다. 드로잉 하듯 토우를 만들었다. 이미지를 그리고 하나씩 손맛을 내며 붙여나간다”라고 말했다.
조각가 김경원(KIM GYEONG WON) 작가는 서울예고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평화화랑, 방배동성당, 학아재, 유나이티드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7회 가졌다. 고대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5동해,독도 특별한국대표작가 초대전-독도오감도’에 출품했다.
△글=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주간한국 2016년 6월20일